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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2014

제주 이주 - 학교 이야기

학교가 숨을 쉰다. 아이들이 학교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학교가 아이들을 맞춘다. 도시에서 매달 내던 우유 대금이 여기에서는 필요 없다. 학교 급식이 아주 맛있다고 한다. 방과 후 수업 중,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학교에서 제공한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고, 만 오천 원이다. 영어교육은 또한 어떠한가. 원어민 한 명과 보조교사 한 명이 참여하고 학기 중에는 주 3, 방학 중에는 주 4회 수업을 한다. 물론 공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사소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것들을 누리며 이곳 제주에 머물고 있는 현재가 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난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희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꺼내자. 마음속에 담겨 있는 그 희망 하나 하나를...

11/28/2011

어린새

『둥지 밖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두려움반 설레임반
   끝없이 펼쳐진 높은 하늘을 향한 강한 도약
   그리고 힘찬 날갯짓』

어린새는 본능에 따라 물을 마시고 먹이를 구하고 깃털을 고른다. 어미새는 지극정성으로 어린새가 둥지를 떠나는 날까지 쉴새없이 먹이를 잡아와 먹여주고 변은 치워준다. 이렇듯 어린새를 보면 여타 동물들처럼 태어나자 마자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는게 사람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만든다.
그렇다고 인간이 어미새만큼 그렇게 자식을 잘 보살피고 있는것일까?

우린 스스로가 가장 우월한 영장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시절 본능적으로 해보고 싶은것들이 많더라도 그것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조차 갖을틈 없이 어린이들은 무엇을 위해, 왜 해야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부모가 잡아끄는 손에 이끌리다보니 소중한 어린날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남보다 한발자욱이라도 더 앞서야 하는 경쟁사회에 일찌감치 내던져진 어린이들.
그런 그들을 볼때 조금은 늦더라도,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그 나이에 걸맞은 선택을하고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부모가 되기를 나는 꿈꾼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은 그런 부모이고 싶다.

비단 이런것이 모든 부모 탓이라고 하고싶지는 않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하지만 사회란게 무엇인가. 같은 무리가 모여 이룬 집단이다. 이 집단이 바뀌기 위해선 개개인이 바뀌어야 한다. 바꿀 의지를 가진 개인이 하나둘 모이고 모일때 사회는 바뀌는게 아닌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안된다를 외치는 어리석음은 우리 세대로 끝낼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9/08/2011

쫓기는 꿈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었다.
어릴적 치기장난을 할때면 술래에게 항상 쫓겨야했다. 오른쪽, 왼쪽으로 도망치다가 다시 방향을 급변경하기도 하면서 안 잡히려고 몸부림쳤던 기억.
이렇듯 실존하는 어떤것에 쫓기는건(그것이 놀이라 할지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일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보고서 제출 시간이 다가오거나 PT준비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야속하게만 흘러가던 기억.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지만 정해진 틀안에서 심리적으로 쫓기는건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것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건 쫓긴다는건 정말 싫은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꿈속에서 무언가에 쫓겼다. 계속 달아났지만 불안했고 뒤따라오는 무언가에 계속해서 감시당하고 철저하게 농락당하는 느낌이였다.
무엇이었을까? 나를 쫓아오던, 아니 내가 죽도록 달아나게 만든건 무엇이었을까?

9/01/2011

[음악] 나는 나비

날고싶다는 생각.
어둡고 거친 껍질을 벗어나 날고싶다는 생각.
젖었던 날개가 다 마르는 그날이 오면 날개를 활짝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고싶다는 생각.
Cocoon to Butterfly..

8/02/2011

DOism

'~ism(이즘)'이란 말이 있다. 명사로서는 '주의(主義)'를 말하고 접미사로 쓰일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의 행동/결과’를 나타냄>
2. <‘…의 상태/속성’을 나타냄>
3. <‘…의 가르침', ‘…체제/운동'을 나타냄>

한때 나도 이런 '이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적이 있다. 그러다가 외부로부터의 '이즘'보다는 내가 만든 '이즘'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단체나 종교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나를 돌아보면서 나만의 생존 방향을 정하자는 의도였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DOism'이라는 것이었다.
'DO'라는 말은 단어의미 그대로다. 무엇이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한것이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후회하더라도 해보자는 의지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DOism'이란 스스로의 좌우명(?)이 생겨났고 나는 'DOist'가 되었다.

아직 그 마음이 변하거나 달라진건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은 가는데 몸이 안따라주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약간은 망설이는 'DOist'가 되어가고 있다.
남에게 피해안주고 그렇다고 나도 피해안받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면서.. 하지만 다시 20대의 생각으로 돌려보고싶다. 아직 할일이 많기에 일단은 해보기로, 일단은 부딪혀보고싶다. 깨지고 터지더라도 해보기로..
하지만 이건 모순이란걸 안다. 나 스스로 인정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삐긋하기라도 한다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을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디오게네스처럼 소소한 행복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내게 있어 한줄기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지금 내가 버려야 할게 더 무엇이 있을까? 다시, 다시 한번 고민속으로 출발~

6/08/2011

선택과 집중

실용적 비관론의 견해로 보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낙관적 실용주의 견해는 '앞으로 나아가려면 희망을 포기하지 마라' 고 말한다.
무엇을 택하든 본인의 몫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길을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과거는 과거일뿐 앞으로의 미래가 더 중요하므로 앞만 보고 전진하는 사람도 있다.
두가지는 완전 상반된 견해이지만 틀린건 없다. 이들은 다를뿐이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 본인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못하는것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현재 잘하고 있는 것을 더 발전시키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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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는 신화속의 개념이다. 파라다이스는 개인의 한계라는 무자비한 현실에 훼손되어 버렸다. 일상에서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파라다이스의 개념을 망가뜨렸다. 누구나 신화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자랐다. 열심히 노력하고 끝없이 낙관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는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손에 쥐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 A Special Relationship 中

5/24/2011

[음악]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2년전 오늘.
마침 찬이의 생일이라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조금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잠깐 시간이 남아 TV를 켰을 때 보고있으면서도 믿고싶지 않은 뉴스특보가 나왔습니다.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흐를뿐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가버렸지만 그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 그 꿈은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숙제로 남았습니다. 숙제 잘해서 나중에라도 칭찬 받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이 노래를 꼭 듣고 싶습니다.

5/17/2011

곪았다 ①

무언가 많은 것들이 자꾸만 곪아가는거 같다. 이런일 저런일 화는 나지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그냥 넘겨버리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자꾸 이건 아니라고 말한다.

상황1. 대학등록금
얼마전 시사프로그램에서 최근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를 다루었다. 인터뷰하는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힘들다고 한다. 매년 오르기만 하는 등록금을 만들기위해 휴학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는 등록금. 방법이 없다고 울부짓는다.
참고로 단과대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등록금은 연 800만원 정도라고 하니 비싸기는 많이 비싸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보다 3배이상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적용해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많이 올랐다.
그래서 각 학교마다 등록금투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아는 바로는 20년, 30년전부터 계속 이어지는 전통(?)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다면 길바닥을 뛰어다녔지만 사회적 이슈가 없을때는 학내투쟁이 늘 있었다. 그중 단골메뉴는 등록금투쟁이였고..
어느 집단이던지 기득권을 위한 상반되는 이해 관계로 첨예하게 대립하는건 자연스런 일이다. 이건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계속되었고 심지어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 학생들이 투쟁하고 있는건 기득권 때문이 아닌 생존을 위한거라는게 문제다.
현재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2007년 3,785명에서 3년만에 6.75배 증가한 25,366명이다. 청춘의 시작을 빚쟁이로 시작하는거다.
인터뷰하는 한 학생이 '청춘이니까 아프면 안되잖아요. 푸른 봄이라는 의미의 청춘인데 아프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라며 울먹이는 모습이 아직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철썩같이 믿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찍었던 손들은 잘못이 없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 뿐이니까.
잘못이 있다면 모든 국민이 다 들었던 공약을 한적이 없다고 안색의 변화도 없이 발뺌하는 그들과 '너무 싸지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면서 '등록금이 오르면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MB와 함께 우린 침묵하고 있다.
아마 그 침묵속에 누런 고름이 가득차있지 않을까? 겉은 말짱해 보이지만 속은 곪아 있는 상태로 말이다.

4/15/2011

마흔의 의미

나이를 먹는다는게 무엇일까?

스무살이 될 무렵은 내심 기뻤던 것 같다. 제도권 사회내의 성인이라는 하나의 존재로 각인되고 미성년자라는 어설픈 타이틀을 떨칠 수 있으니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또 있다면 과거를 돌아볼 필요없이 미래에 대한 생각만으로 족했으니까.
하지만 진작 알았더라면 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낙인 찍힌다는게, 구성원이 된다는게 맨입으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사회의 짐을 어깨에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무살에서 서른이 될 시점에는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게 나도 서른이 된다는게 마음속에 앙금처럼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거의 매일 들었던 것 같다. 노래만큼 어깨는 무겁게 느껴지고 희망찬 미래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도 대면해야 했고, 또 과거의 아쉽고 후회스러웠던 일들과 무모하다 하더라도 시도조차 못해본 수많은 계획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제 서른에서 마흔으로 갓 넘어왔다.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 인지 어떤 자리에서는 아직 만으로 서른아홉임을 주장하지만 씁쓸한 입맛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무살 무렵이었는지 서른살 무렵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마흔을 동경했다. 빨리는 아니지만 마흔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왜 그랬을까?
불혹(不惑), 말 그대로 사는일에 정신을 집중하기에 흔들림없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내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부분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한번 내밷은 말은 책임 지려했다. 그래서 함부로 약속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내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아직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 혼자만 그렇게 믿고 스스로 만족한 것 뿐, 단지 나를 믿어달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급급한건 아니였을까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아직은 내 말에 책임을 지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마흔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다시 나를 가다듬는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말이다.

4/05/2011

욕심 비우기

이제는 설정한 목표가 사라졌기에 의지도 의욕도 희미해졌다.
아무런 목표없이 그냥 무거운 짐만 들쳐업고 살아보자 생각하니 너무 버겁다.
그렇다고 옆으로 털썩 내려놓을 수도 없는 현실이라 생각할수록 갑갑하지만 어찌되었건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이기에 나 몰라라 외면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듬어 안고 내 몸의 일부인양 가져가자니 솔직히 자신이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나름 오랫동안 바래왔던 일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이대로 주저 앉고 싶지만 어쨌든 살아야 하기에 일단은 내 마음부터 다 털어내고 비워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단지 감춰두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그 욕심이 나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기에 마음속 움크리고 있던 이룰수 없는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는게 먼저 일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은 가볍게 살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에 더 이상 허황된 욕심을 채우지 않고 말이다.

미안합니다. 너무 간절했기에 미안합니다...

2/14/2011

[음악] 매

갑자기 이게 듣고 싶었는데 LP로만 있는 답답한 현실속.
다시 한번 웹 세상을 감사하며..

기타소리 참 좋다~ "너에 하늘로 후~~"

1/27/2011

[음악] 푸른 애벌레의 꿈

시인과 촌장 3집 앨범 뒷면 끝쪽에 있던 노래입니다.
20여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가끔 흥얼거리게 되는데..
아마도 마지막 구절의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눈치 채신분들도 있겠지만 CI에 영감도 많이 주었구요.

"... 이 어둠에 껍질을 벗고 이기고 나가
그렇게 목말라 애타게 그리워했던.
새로운 하늘, 새로운 태양, 새로운 빛깔의 세계를 날아다닐
자유.. 자유.. 자유..." 

11/24/2010

전공

Oldman 님의 글을 보다가 든 생각입니다.

대학을 나와 전공에 맞는 직종에서 10년이상 근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를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과연 전공이 잘 사는것과 관계가 있을까..

먼저 나 자신조차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전자공학(세부 전공 : Multimedia signal processing) 졸업하고 처음에는 관련업종에서 일을 했다.
수학적인 새로운 수식을 만들어 적용하고 논문쓰고 특허내면서,
Digital TV, Personal Video Recoder, Mobile Multimedia, Handset Device, PDP, Multimedia Chipset 등의 S/W 관련 일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만 그런 경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기본이되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분석과 운영에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니...
아동학과 나와서 프랜차이즈 운영하는 분.
물리학과 나와서 프로젝트 관리 하는 분.
법학과 나와서 보험 영업하는 분.
지질학과 나와서 기자하는 분.
도시개발학과 나와서 수출입 하는 분.
세라믹학과 나와서 금속 일 하는 분.
전자공학 나와서 중장비 만드는 분.
의상학과 나와서 보험 영업하는 분.
축산학과 나와서 보험 영업하는 분.
컴퓨터공학 나와서 학원 운영하는 분.
독문과 나와서 IT 엔지니어로 일하는 분.
경제학과 나와 CATV 일 하는 분.
전자공학 나와 용역 일 하는 분.
전자공학 나와 변호사 하는 분.
전자공학 나와 변리사 하는 분.
전기공학 나와 건출설계 하는 분.
미대 나와 영어학원 하는 분.
전기공학 나와 펜션 운영 하는 분.
동시통역하다가 수출입 하시는 분.
경제학과 나와 병원에 계신 분.

물론 다른 많은 분들이 전공을 살려 아직 현업에 종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만 적어보았다.
현업이라고 하지만 나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전공과 연관은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재미없게 살고 있을까?
이들이 전공과 다른 일을 한다고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건 아닐게다.
본인의 계획과 의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엊그제 수능시험이 끝났다.
그렇게 대학이라는 곳을 향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못하는 젊은이들) 등 떠미는 사회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튼 수능 치룬 수험생들에게 모두 행운이 있기를..

9/29/2010

혼혈

중학교 시절 절친한 친구들 사이에 유난히 검고 심한 곱슬 머리를 가진 녀석이 있었다.
순발력과 탄력이 좋아 농구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녀석은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친구는 혼혈, 요즘말로 다문화 가정이였다.

요즘 광고를 보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공익성 광고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골 농촌을 가보면 어디서나 볼수 있었던 '베트남 처녀와의 결혼' 이라는 현수막이 기억난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과 민족문제로 인한 소련연방의 급속한 붕괴에 따른 소수민족의 독립, 이로 인한 러시아/중앙아시아 여성들이 취업, 결혼 등의 이유로 입국을 많이 했다.
그리고 실제로 농촌에 가보면 쉽게 다문화 가정의 자녀, 혼혈아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들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제 성인으로서 사회에 진출 할 정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단일 민족이라는 허울좋은 단결성을 강조했기에 이민족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이다.
서양 백인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유색인종(중국, 동남아)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현재 대략 120만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대우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듯..)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혼혈인을 따뜻하게 포용해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공평한 기회와 평등한 대우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들은 주민증도 있고 투표권도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부딪치는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고용시장이 팽창되어 있다면 조금은 덜 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대졸 청년실업 문제, 외국인 근로자 인권 문제 등)에서 과연 혼혈 청년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내가 보는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을 듯하다.
제도적인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에게 이끌려 앞다투어 경쟁하는게 요즘의 상황인데 과연 혼혈인 그들을 같은 경쟁의 상대로조차 여길지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공평함으로 인한 몇번의 좌절과 몇번의 부당한 편견으로 상처받았을때 이에 대한 울분, 저항이 자신들을 자꾸 궁지로 몰아내는 사회에 어떤식으로 표현될런지는 모르겠다.
내 좁은 생각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의 우리들,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커다란 새로운 과제가 아닐까 생각든다.

중학교 시절 그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신감 있게 지냈던 녀석이였기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잘 지내리라 믿고 싶다.

9/07/2010

[영화] Out of Africa

아주 오래된 영화다. 내가 중학생일때 나왔으니..
하지만 명작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명작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두 배우의 연기력과 대사는 꽤 괜찮은게 많았다.
그 중 한 구절..


카렌: 당신은 떠날 때마다 사냥 여행만 가는 게 아니죠? 그저 떠나고 싶은 거죠?
데니스: 당신 맘을 상하게 하려 했던 건 아니요.
카렌: 그러나 상해요.
데니스: 내가 당신과 있는 건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이오. 난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고. 그런 걸 나에게 요구하지는 마시오. 난 다른 사람 삶의 연장된 부분이고 싶지 않소. 물론 나만의 삶에 대한 대가는 따르겠지. 외로움이라든가, 혼자 죽는 것...... 공평한 거지.

8/18/2010

변색

옷장 정리를 하다보니 구석에서 오래된 흰 면티들을 발견했다.
몇 년 동안 입던것들인데 누렇게 변색이 되어버려, 삶고 빨았는데도 예전의 흰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입기에는 조금 망설여져서 할 수 없이 폐기 처분 했지만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녀석들인데 말이다.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볼때면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하고 아름답던 것이,
자라면서 세상의 물정에 조금씩 물들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자신이 의도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스스로의 목표를 정하고 살아가지만,
살다보면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또 자신이 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과연 자신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망각하게 된다.
살다보면 누구나 그렇다.
그렇다고 너무 목표 지향적으로만 달려간다면 그 또한 재밌는 삶. 만족스런 삶은 아닐것이다.

언제가 되더라도 마지막 순간이 될때,
그냥 내가 살아 온 모습을 돌아보고 쓱~ 편한 미소로 만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겉보기

오래전.
우리 삼형제의 가족사진을 보고 초등학교 2학년 조카 녀석과 그 친구들이 모여 인기투표를 한적이 있다.
작은 형님 3표, 나 3표 끝..
(조카 녀석은 자기 아버지, 즉 나에게는 작은 형님을 찍었으니 객관성 부족이므로 무효라고 난 주장한다.)

그리고 얼마전.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이런말을 들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멋있네. 분위기 있고.."
이 나이에 이게 왠 횡재란 말인가!!

언제나 바램은 나이에 걸맞는 모습으로 점잖게 늙어가는거 였는데 말이다.
잘 생겼다는 말은 20대에서나 들으면 좋은 것이고,
멋있다는 말과 분위기 있다는 말은 30대 중반 이후에 들어야 어울리는 말인거 같다.
아직까지는 겉보기로도 먹혀들어간다는..에헴~

7/14/2010

일제고사

곧 방학입니다.
학교 다닐때 가장 기다리던 그 여름방학입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겨울방학이 더 좋았습니다.
왜냐면 여름방학보다 조금 더 길었고 쉽게 배낭을 꾸려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 치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학 전에는 기말고사라는 커다란 짐이 있지요.
3~4일 만에 10여 과목을 치뤄야 하는 전쟁.
그 전쟁의 승패에는 관계없이 방학은 시작되지만,
그 전쟁의 포화속에서 살아 남아야 해피한 방학을 누릴 자유가 주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하던 그때보다 요즘 아이들은 더 불행해 보입니다.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그때보다 몇배 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지치고 피폐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웬만하면 초등학교때부터 일주일에 학원 3-4개 다니는게 기본입니다.
아이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코앞인데도 일제고사라는 또 다른 전쟁터가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시험보는 기계인가요?
그렇다고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현장학습을 신청하면 무단결석 처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등상보다 쉽게 얻을수 있는 개근상을 못받게되겠죠.
그런데 그 개근상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이들이 공부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그래서 그 부모들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죽어라 공부를 강요하나요?
제가 보기에는 공부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직장 이런것 또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유아기부터 억압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과연 성장해서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주입식 학습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성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것과,
스스로 개척하여 자유로움을 찾고 편하게 사는 것 사이에는 분명 trade-off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일제고사를 거부하더라도 스스로 그에 상응하는 어떤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두려움없는 자유를 향해 내딛는 용기 있는 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전 일제고사를 반대합니다.

라거 맥주의 원조 필스너우르켈을 찾아서.. Plzen, 2006

6/30/2010

[공지] 2010 상반기 결산

어수선한 국내외 경제 상황과 연내 금리 인상이 거의 확정적으로 보이기에 하반기도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CD 90일 금리가 조금씩 상승하는 모습도 그렇고, 일각에서 계속 재기되고 있는 더블딥도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 판단됩니다.
경제가 살아난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실제로 느끼는 실물 경제, 체감 경제는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고 상황에 경기선행지수 역시 5개월째 하락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Citi bank에 의한 서킷브레이크가 발동한 것도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좀 찜찜합니다.
지난 금융위기때 위험부담이 컸던 곳이라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절실했지만 일시적 공적자금 땜방으로 위기를 은근 슬쩍 넘긴게 아직은 위험한 뇌관처럼 보입니다.
늘 그렇지만 하반기는 특히나 조심해야 할 구간인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 2008년의 상황이 재현되는게 아닐까 심히 우려됩니다.

Cocoon Asset의 상반기 성과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3번의 손실 확정에 따른 타격이 아직 극복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1호,2호,3호 펀드의 중간 배당은 모두 지급되었고,
계약 만료시 약정 수익은 보장해 드릴 것이며, 하반기 운용 실적이 좋아서 특별 배당까지 지급해 드렸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어떤이들은 벌써 날개를 달고 날아가기도 하지만,
Cocoon Asset은 아직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더 깊고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후 안정화 될때쯤이면 수 많은 Cocoon들이 부화하여 하나 둘씩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갈 것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