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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014

제주 이주 – 나도 그들처럼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어떤날이라고. 거기엔 조동익이 있다
어떤날은 1989 2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이병우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으로 학위를 받으러 떠나 클래식기타과를 수석 졸업을 했다. 그러는 동안 조동익은 우리 곁에서 홀연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제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와 오랜 음악적 친구이자 정신적 동료인 장필순과 함께 말이다.
그 소식에 난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이제는 제주에 머물고 있다. 
처음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우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사랑하며 살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애월의 2014년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간다.


모두 행복한 2015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09/2014

제주 이주 - 마을 사람들

집 앞 양배추밭 사잇길을 걸어가던 중에 떠돌이 개가 정면에서 뛰어왔다. 순간 당황해 할 때, 옆 밭에서 일하시던 할망이 돌을 던지며 물리쳐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저쪽 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했더니 할망은 바로 앞 골목 안쪽에 사신다고 했다. 
해 질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나가보니 아침에 뵈었던 앞집 할망이다. 두 손에 들고 계신 콜라비를 내밀더니 '한번 먹어보간~'하셨다. 어떻게 먹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아직 남아있는 시골인심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하루.

10/24/2014

[음악] 김동률 신곡 - 그게 나야(Who I Am)

늘 비슷한 느낌이지만 듣다 보면 또 듣고 싶은 묘한 목소리다.
신곡이다. 그런데 왜 영문 제목과 한글 제목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나만 그런가..

김동률 신곡 - 그게 나야(Who I Am)

8/26/2014

[음악] 만약에 말야 -노을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 '만약에'란 말이다. 그런 가정하는 일 없이 후회없이 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다보면 나에게도 그 '만약에'가 허락된다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겠지.
쓸대없는 고민이지만, 긴 밤이다.


8/19/2014

Jamaica Blue Mountain Coffee

사무실 커피가 떨어졌다. 주문해야지 하면서 계속 까먹었다. 며칠을 인스턴트 커피로 버티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커피를 선물 받았다. 스틱 형태인지라 인스턴트 커피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향기가 아주 좋았다. 인스턴트 커피 봉지가 뜨거운 물에 닿으면 환경 호르몬이 나와 안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건 미국 FDA 기준에 맞게 만들어졌다고 하니 믿어볼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 찝찝하길래 봉지를 뜯어 머그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진하게 우러나는 커피 향이 아주 좋다.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런데 막상 마시려고 보니, 인스턴트가 아닌 분쇄한 원두커피가 아닌가? 적당한 필터가 없어 그냥 한 모금 마시려니 커피 알갱이가 입안에서 굴러다닌다. ㅠ
남은 몇 봉지의 맛있는 Jamaica Blue Mountain Coffee는 있는 그대로, 사용법 그대로 마시기로 하고 주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1/15/2011

설악산

1980년대 말. 겨울산에 한참 미쳐있을때였다.
특별한 겨울용 장비도 없지만 그저 눈이 한바탕 내리는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고속버스를 타러 갔던 오래전 기억들.
지금이야 히말라야도 다녀올수 있을만큼의 좋은 장비들도 손쉽게 구할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장비들은 너무 고가였고 내게 있는 산행장비라고는 보온을 위한 백양 3중 보온메리와 오리털 파카 그리고 겨울산의 필수품인 아이젠뿐이였다. 그것도 고작 4발짜리.
버너도 당시는 가스버너는 거의 없었고 기름버너(알콜로 예열하는)뿐이라 무거웠다. 음식물도 지금처럼 간편한 레토르트 식품이 없어 감자, 양파, 쌀과 같은 부식을 한가득 짊어지고 가야만 몇일간의 산행이 가능했다. 그러기에 배낭의 무게는 늘 가녀린 내 어깨를 짓눌렀다.

설악산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다.
천불동 계곡을 타고 오르다 죽음의 계곡 코스로 대청봉까지 가는 코스와 일행을 만나는 경우는 공룡능선을 타는 코스다. 두 곳 모두 말로 표현할수 없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코스다.
당시에 만났던 동국대 산악부 다람쥐형, 명일여고 수학샘, 이태원 뉴욕피자 지배인님, 방배중학교 마유미누님, 그리고 정체를 알수 없었던 산적형님들이 기억난다.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는걸 보니 후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 1988년. 대청봉을 내품에(위), 마유미누님과 대포항에서(아래)

11/10/2011

[음악] 인생은 금물

모든 사물의 '이름'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음악을 하는 그룹들은 그들의 음색을 그룹 이름에 함축하고자 한다. 가끔 자우림(紫雨林)의 노래속에는 그들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몽환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밴드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
무슨 느낌일까? 솔직히 감 잡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문득 '지독한 현실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다. 내가 느끼기에 그들의 음악속에 녹아있는, 혹은 그들이 녹이고 싶었던 지독하게 현실적인 우리들의 모습들, 특히 사람과 사랑에 관해서는 말이다.

언젠가 우리 별이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어쩔수 없죠 그렇게 정해져 있는걸
   세상을 만든이에겐 아무일도 아닐테니까...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마 
   먼저해본 사람의 말이
   자유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죽을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10/10/2011

Quantum Jump

다들 무슨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무슨꿈을 꿔야 하는걸까?
아주 높게,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싶다.



▶▶ 안개가 살짝낀 몽환적 분위기의 아부오름에서.. 2011.7

9/22/2011

빛바랜 사진 한장

앨범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사진들에 눈길이 머문다. 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사진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온만큼의 시간은 그곳에 남아있는듯하다.
사진을 볼때 조금 특이한 나의 버릇이 있는데 그건 사진속에 있는 나를 보는것보다 사진을 찍어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는것이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와 함께 그 공간에 머물렀던 그 누군가가 찍어줬던 그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사진속의 나는 앞에 있는 누군가를 보고 활짝 웃기도하고 찡그리기도했다. 누구였을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지? 어떤 기분이였을까?
정확한 기억을 끄집어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오래된 사진을 한장한장 넘기다보면 과거의 추억 언저리가 만져지는듯 하여 좋다.

그런 느낌도 좋지만 그보다 더 기쁜일이 한가지 있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은, 버려야 하지만 차마 버릴수없는 사진들을 아주 우연찮게 만나게되는 일이다.
접착식 앨범이 아니라 포켓식 앨범이라면 더 가능성이 높다. 전면 사진에 가려져있는 숨겨진 사진을 발견할때 느끼는 황홀한 기분은 아마 느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오늘. 한장의 빛바랜 사진을 찾았다. 1990년대 프랑스 어디쯤에선가 활짝 웃으며 함께 찍었던 사진을..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내 머릿속에선,
'가만있자.. 찍어준 사람이 누구였더라...'

▶▶ 1992년 '인구'에서..

8/12/2011

속마음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말 겉모습만보고 상대를 판단한다는게 참 어리석은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고 그 다양성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정도로 비참한 기분이들 정도로 잘못 판단한적이 없었는데..
다중인격과 사이코패스가 어느정도의 심각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경험한 순간.
사람이 무섭다.

7/26/2011

당신에게

나의 하늘을 모두 점령해버린 당신에게..
당신만 잘 견디고 행복할 수 있다면 당신의 미래에 내가 들어있지 않더라도 난 괜찮다.
  - 언젠가는 하고싶었던 말 中

7/20/2011

처방전1

익숙함과 아는것의 차이를 구분하라. 내가 그대를 진정 알고 있는 것 일까?
계획을 세울때는 잠재된 장애까지 파악하라. Outside view 관점에서 보는가?
 -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몇 가지 것들 中

7/19/2011

연(緣)을 맺는 사람들

살다보면 만나게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잠깐 스치는 인연도 있고 몇년 몇십년 만나면서 깊은 교감을 맺게되는 인연도 있다. 또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인연과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인연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잠깐 스치는 인연의 횟수는 많아지지만 새롭게 만나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게되는 인연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라는게 보통 어렵고 힘든게 아니다. 잠깐이라도 나의 마음을 보여주었다가 원치 않던 결과로 상처를 받게되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봐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난 늘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다. 그 만남이 훗날을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나에게는 설레임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인연이라면 말이다.

몇 달전부터 가려고 했던 여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이번에야 다녀왔다. 내 앞에 산재한 수많은 걱정들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바램과 앞으로의 새로운 터전이 될지도 모를 곳에 대한 기대감,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다른복은 없더라도 인복이 있는 사람일거란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나눌수 있었던 많은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의 조우는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각자의 슬픔, 아픔, 기쁨, 행복함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간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다만 자신을 숨기려하기에 스스로를 밖으로 내보이려고 하지 않을뿐이다. 자신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어둔채로..
하지만 감추고 숨기려했던 그 공간을 누군가 따뜻하게 다가가 노크라도하고 공감하려하면 굳게 닫아두었던 문을 열기 마련이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과 장소가 필요할뿐 다른것은 불필요하다. 특히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활짝 열린공간이라면 더욱 그 문을 쉽게 열수 있다.
가끔은 상처입을수도 있지만 그런 상처받는 일보다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세상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나보다. 그래.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게 맞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그 아름다운 공간을 함께 해준 영돈, 승철, 재혁, 호혁, 혜미, 영미, 미영, 미현, 희철, 민성, 동건, 수연, 락연, 나혜, 성배, 수영, 20살 막내들, 꽃미남과 선배, 베트남처자, 작곡가 선생님과 따님, 광주깽(?)들, 정착지 알아보시던 두형제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올레사랑님, 제주해양과학관 부부, 그리고 하늘, 강산, 바다와 신산 동생부부 모두 지금처럼 행복한 웃음 늘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7/15/2011

현실속으로..

다시 돌아온 현실.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만큼 많은것을 버리고 오기를 바랬고 버렸지만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다시 채워져가고 있다.
이런 허탈함은 누가 어떻게 알아줄까?

6/23/2011

관음증과 노출증

SNS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수도 있다.
혹자는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경우도 있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시간 습관적으로 필터링없이 마구 올린다. 이런 경우라면 노출증이라고 할만하다.
또 자신의 상태는 대부분 친구의 친구까지 공개를 하는데, 그 친구의 친구가 오래전 헤어진 애인이라던가 짝사랑하던 상대였다면, 그런 이유로 친구 대 친구의 신청은 못하면서 상대방의 상태를 끊임없이 들여다 본다면 이건 관음증이라 할수도 있겠다.

세상 모든것에는 부작용이 있는것처럼 SNS 또한 이런 부작용이 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만을 보고 그것이 '나쁘다!'고 판단하는건 아니라고 본다.

SNS가 주는 긍정적인 면은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목적보다는 멀리 해외에 있는 지인들이나,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보다 쉽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상태를 봐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본다면 SNS의 부작용은 긍정적인 면과 충분히 상쇄된다고 본다.

SNS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 원인이 본인과 세상과의 엇박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모든것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스스로에게서 찾아본다면 조금 더 현명한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로빈슨크로스 신드롬처럼 안으로만 안으로만 기어들어가 숨고 외부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 또한 바람직하지 않기때문이다. 물론 이런 문명의 이기보다 주변 지인들과 자주 연락하고 직접 만난다면 당연히 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은 그러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아닌가.
그렇다면 과하지 않게 적당히 유지하면서 지인들의 사는 모습과 현재의 생각들을 공유한다면 더 없이 바람직한 세상과의 소통도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SNS를 노출증이나 관음증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사상을 나타내는 이런 블로그는 더 심한 노출증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블로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조금더 깊게 숙고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적어두는 곳일테니 말이다.

어떤것이 더 옳고 그른지에 판단보다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가져보자.

6/09/2011

난 정상인가?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handicap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를 뭐라고 부를까? 정상인?

언어라는게 쓰이는 곳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非'자는 말 그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비정상, 비주류, 비인간적, 비생산적, 비공식적 .. 무언가 벗어난 느낌이고 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

장애인들은 우리를 非장애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그들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非'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우린 非장애인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이 우선이다. 그들의 눈에는 분명 우린 非장애인이다.
다만 우리도 장애우를 볼때 제발 非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들 누구도 자신이 정상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4/19/2011

Unpacking

월 초부터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조금씩 짐을 꾸렸다. 한달 정도의 약간 긴 시간을 생각하다보니 가방이 무거워졌다. 짐을 좀 줄이자는 생각에 책 10권중 4권을 빼고, 이것 저것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을 꺼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겁다.

몇 일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backpack의 지퍼를 닫았다. 이젠 떠나기만 하면 된다.
막상 떠나려고 하려는데 일이 좀 생겼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일정을 조금 미뤘다. 아쉽기는 하지만 조금 늦어지는 것일뿐 어차피 떠나는건 변함없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몇일 뒤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번에도 그냥 두고 갈수 없는 신경쓰이는 일이 생겼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안경 다리가 힘없이 부러졌다. 그동안 아무 이상없던 녀석인데 부러지니 좀 당황스러웠다.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찜찜해 다시 몇 일을 미뤘다.
그래 오늘은 떠날수 있겠지. 마음 비우고 출발하려는데 이번에도 불발이다. 내 일정에는 상관없이 또 다른 일이 나를 가로막는다. 할 수 없이 비행기표를 취소해 버렸다.
세번의 시도. 3주간의 delay. 다 지나간 4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냥 생각없이 시간 보낼 계획을 했던건데 이번에는 때가 아닌 듯 하다.

난 지금 unpacking 중이다. 휴~

4/05/2011

욕심 비우기

이제는 설정한 목표가 사라졌기에 의지도 의욕도 희미해졌다.
아무런 목표없이 그냥 무거운 짐만 들쳐업고 살아보자 생각하니 너무 버겁다.
그렇다고 옆으로 털썩 내려놓을 수도 없는 현실이라 생각할수록 갑갑하지만 어찌되었건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이기에 나 몰라라 외면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듬어 안고 내 몸의 일부인양 가져가자니 솔직히 자신이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나름 오랫동안 바래왔던 일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이대로 주저 앉고 싶지만 어쨌든 살아야 하기에 일단은 내 마음부터 다 털어내고 비워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단지 감춰두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그 욕심이 나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기에 마음속 움크리고 있던 이룰수 없는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는게 먼저 일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은 가볍게 살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에 더 이상 허황된 욕심을 채우지 않고 말이다.

미안합니다. 너무 간절했기에 미안합니다...

3/17/2011

사람이 살고있었네

지난해 10월 중국의 사진작가가 평양을 촬영한 영상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고 배운 북한은 굶주리고 가난에 찌든, 인간미 없는 북괴였는데 그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였다. 이렇듯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것도 많은 부분 왜곡되어 있는데 아마 그곳의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남한에 대한 왜곡된 진실만을 접하고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사는곳이니 그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스크린속 그곳은 우리나라의 70년대를 보는 듯 하다. 다만 사람들의 복장이나 표정이 주변 시설물들과 약간의 부조화(?)를 느끼게 하지만 그건 그 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다.

이발소에서 따뜻한 수건으로 스팀 마사지 해주는 모습은 어릴적 동네 이발소에서 보던 모습이다. 나도 크면 저렇게 이발소에서 얼굴 마사지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이발소가 아닌 헤어샾으로 다들 바뀌었으니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현재 모습.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3/11/2011

[음악] 눈 오는 밤

10여년 전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오래된 분들과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은 약간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고 직책도 다들 올라가서 점잖아질만도 하지만, 함께 모이면 옛날 이야기로 늘 시끌시끌하다. 

이번에는 플로리다로 안식년을 떠났던 샘교수가 돌아와서 모이는 자리였는데 역시나 고정 참석은 강상무, 아쭈, 터프가이,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강선수.
아무튼 이분들을 만나는 날이면 늘 즐겁고 행복하다.
아마 10년이 더 지난 후에는 또 서로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 지기는 하지만 그때 만나더라도 늘 마음은 처음 만났던 시간들을 훓터보면서 껄껄거리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걸 추억이라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