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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2011

낙동강 상주보

불과 일주일전 보 개방행사를 성대하게 마친 낙동강 상주보가 부실공사로 인해 물이 새고있다.
보를 사이에 두고 상류 수심은 현재 10m이고 하류 수심은 2.5m인데, 하단에서 8m 높이까지 누수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안전진단도 없이 새는 물만 가리면 되는양 발포우레탄을 갈라진 틈사이에 덕지덕지 바르고 있다. 이런걸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게 보이는 문제는 고정보 뿐만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쌓아놓은 제방쪽도 누수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물이 옹달샘처럼 계속 흘러나오지만 보수공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토목공학 전문가들은 '누수현상은 내구성을 저하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붕괴의 우려가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수현상을 100% 다 잡을 수 없다. 홍수 때 더 큰 수압을 견디기 위해서는 상류의 물을 차단하고 긴급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공사 관계자의 대답이 참 가관이다. '콘크리트를 나눠 치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이음부에 누수현상이 일어난 것이고 안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조금만 틈이 생겨도 엄청난 수압으로 인해 물이 새어나온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보도 다 셀 것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관계자의 대답이 이렇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거대한 댐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생겼다고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라는 소리로 들릴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옛날 동화하나가 생각난다.
네덜란드를 구한 소년의 이야기..
누군가는 막아야한다. 더 큰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 고정보 누수(위)/제방쪽 누수 상태(아래)

11/18/2011

귀신 << 2부

설악산에 가면 늘 하룻밤 묵는 곳이 있는데 바로 양폭산장이다. 천장이 낮아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한 돌집인데 그 곳에 가면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거의 해가 질무렵 도착한 산장에서 난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해야했지만 그곳에 계신분들이 이미 차려놓은 식사를 같이 나누자고 하셨다. 산에서는 이런 초대가 비일비제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모여앉아 식사를 함께 했다. 소주 한잔도 자연스럽게 돌려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9시가 지나고 있었다.
다음날의 일정들이 있기에 산에서의 술자리는 일찍 끝난다. 모두들 잠자리로 돌아가는 사이 난 산장 옆으로 나와 담배 한개피에 불을 붙였다.
차가운 겨울 공기속에서 뜨거운 연기 한모금을 토해내며 아주 밝고 하얀달이 하얀 눈으로 덮인 사방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장관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가려린 피리소리였다.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려니 생각했는데 아주 또렷한, 귀에 익은 소리다. 자연스럽게 산장 건너편 만경대를 바라보게 되었고 잊고 있었던 그 연두색 존재가 만경대 꼭대기에 걸터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것이 귀신일지라도 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잊고 있던 존재였기에 더 더욱 반가웠다.
아주 잠깐동안이였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처럼 난 그 존재를 바라보며 그 피리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 소리가 뚝 끊기고 그 연두색 존재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뻗으면 만져질만큼 가까이 느껴졌는데 그 손이 나를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존재는 이미 사라졌다.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만경대 꼭대기를 올려다 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없었다. 그렇게 또 가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몸이 너무 추웠다.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서 저절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내 손에는 아까 한모금 빨아들이고만 담배가 그대로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었다. 휴~~
산장에 들어오니 다들 깊은 잠에 취해있었고 난 차가워진 몸을 침낭에 눕히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산장은 시끌벅적했다. 무슨일인지 밖에 나가보았을때 난 뜻밖의 사건을 보았다. 산장 옆으로 눈사태가 나서 올라가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산장지기의 말로는 어제밤에 눈사태가 났다고 했다. 다들 일찍 잠들지 않았으면 큰일날뻔 했다고..
그런데, 그런데 눈사태로 모두 덮여버린 그곳이 내가 어젯밤 서있던 바로 그곳이였다!

세월이 한참 지났고 두번 다시 그 연두색 존재를 본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 그 장소에서 나에게 손짓해 준 그 존재는 무엇이였을까 생각해본다.
혹시 나를 수호하는 정령? 아니면 우연과도 같이 잠시 스쳐지나간 귀신? 나만의 착시?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수는 없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가 분명 있다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언제 어느곳에서든 자신을 보살펴주는 존재는 반드시 있다고. 그것이 나에게만 보이는 존재일수도 있고 아니면 내 주변에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만났더 그 존재를 다시 만날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언제가되든 꼭 한번 보고싶다.

귀신이란 단지 연약한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라 생각한다. 혼란속 내 젊은날의 경험처럼...

▶▶ 1991년 양폭산장. 오른쪽에서 쓸려내려온 눈들이 계곡을 덮었다

10/17/2011

북촌마을

어느 나라든지 아픔의 역사가 있다. 체코의 프라하를 가면 중앙광장에 아직도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체 게바라'로 알려진 쿠바혁명도 있다.
물론 다른 어느나라보다도 우리에겐 수많은 아픈 역사가 있다. 그것도 외세에 대한 저항보다는 내부적인 탄압과 억압에 의한 일들로 말이다.
5.18 민주화운동, 4.19 항쟁, 부마항쟁, 4.3 항쟁 등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일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정확히 알고 있는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거나 아니면 철저한 언론통제와 왜곡에 의해 감춰져있던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주 4.3 항쟁도 그런것 중 하나가 아닐까?
4.3 항쟁에 대해서는 현기영 작가가 쓴 '순이삼촌'이라는 책이 있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책이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4.3 항쟁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던 기억이 난다.

조천읍 북촌리에 가면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다. 북촌은 당시 마을주민 700여명중 443명이 희생되었고 단 하루에 남녀노소 할것없이 300여명이 학살당한 지역이다.
단 하루동안 300명이 넘는 주민이 집단학살당한 이 너븐숭이에는 당시 영문도 모른채 죽은 2~3살 애기무덤들이 아직 남아있고, 그 아픔을 위로하기위한 비석들이 앞에 줄지어 서있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자유를 위해 죽어야 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런 아픈 역사앞에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럼없이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그런 그들과 함께 아직도 부디끼며 살아야 한다는게 부끄럽다.
언제쯤 이런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그런 세상이 올수 있을까?

8/17/2011

돌덩이


유치원을 끝내고 찬이 친구들이 놀러왔다. 텔레비젼을 보며 놀다가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찬아. 넌 엄마가 하늘나라 갈때 울었어?'
옆에 있는 나는 잠깐 움찔하면서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찬이는 단번에 대답한다.
'아니. 안울었어!'
그러다 아주 잠시 말이 없다가 '울었어' 이런다.

그 잠시동안, 그 말이 없던 잠시동안의 찬이 생각은 어땠을까.
내 마음속 돌덩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순간.
미안하다. 아들..

7/18/2011

잘못된 상식

1. 심폐소생술
일반적으로 물에 빠지거나 심장발작 등으로 호흡이 일시 정지했을때 명치부분을 압박하고 mouth to mouth로 생명을 살리는 응급처치다.
누구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심폐소생술의 부작용은 대부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동반한다는 사실.

2. 자동제세동기
일반적으로 심장이 멈출 경우 자동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준다. 영화에서 흔히 'charging~' 그리고는 심장쪽에 두개의 전극판을 들이대면 사람이 튀어오를 정도로 충격이 심하다.
몇 번하면 뚜~ 하던 심장이 뚜뚜뚜.. 하는 것을 자주 볼수 있다. 하지만 이것의 후유증은 가슴부위에 심각한 화상이나 장기손상을 동반한다는 사실.

여름 물놀이 철이 다가오면서 행여나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하여 아는척하면서 심폐소생술 했다가 나중에 갈비뼈가 부러져 고소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서 위급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부작용이 있더라도 일단은 살려야하니 바로 응급처치를 하는게 맞겠지만 잠깐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무리하게 친절(?)을 베풀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는 경우도 생긴다.
세상이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옳은 일인줄 알면서도 감히 할 수 없는 수 만가지 일들 말이다. 그렇다면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걸까?

6/24/2011

결정

▶◀
만나뵌적은 없지만 참 좋은 분께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먼저 좋은 곳으로 가신 그분 어머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고 안녕히 가십시요.
▶◀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실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위독해 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셨고,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가 본 아버지는 반 의식이 없는 상태셨다.
의사는 우리를 불러 지금 삽관술을 한다면 생명 연장이 가능하지만 그대로 둘 경우 하루를 못 넘기실거라고 했다. 하지만 삽관술을 하게 된다면 강제 수면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하루에 두번 면회만 가능하다고 했다.

살면서 이런 순간, 이런 결정을 해야하는건 늘 두려운일이다. 나의 결정에 의해 어떤 존재의 상태가 변화되어 버리는 것,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리거나 못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게 전능한 결정권을 가진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혈관을 찾기위해 손이고 발이고 관자놀이를 다 찔렀는데도 혈관은 잡히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사타구니의 정맥에 주사바늘을 찌르고 있는 순간이였으니까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렇게 보내 드릴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지만 우린 삽관술을 안하기로하고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 호흡이 조금 안정되시며 정신을 차리셨고 병실로 옮긴 후 우리들과 며칠동안 이야기도 하면서 계셨다. 그리고는 어느날.. 가셨다. 응급실에 실려 오신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다.
평생 깔끔한 분이라 마지막 숨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스스로 용변을 보시고 돌아와 자리에 누우셨는데... 뚜뚜뚜뚜 뚜~~~~~~ vital sign도, 모든 기계장치도 멈췄다. 그것이 끝이였다.

지금은 오래전 일이라 담담하게 말할수 있다. 만약 그때 삽관술을 했다면 어쩌면 지금도 아버지는 살아 계셨을지도 모른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하지만 우린 아버지와 같이 호흡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감사한다.
아버지도 그런 우리를 이해하셨으리라 믿고싶다.

누구나 살다보면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원하던 원하지않던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후회는 지울수 없는 문신처럼 평생 따라다닌다. 그것이 잘한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6/13/2011

주말 사건

#1.
새벽 고속도로에서 1차선을 달리던 중 전방에 고라니를 발견했다. 정말 급하게 핸들을 꺽어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차는 좌우로 휘청, 등골은 오싹. 아마도 옆차선에 다른 차라도 있었다면 100% 충돌이였고, 만약 핸들을 1cm만 더 꺽었더라면 차는 전복되었을거다. 시속 140km/h 전후였으니.. 어찌되었건 나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1차선에 있던 그 녀석은 집으로 잘 돌아갔는지 걱정.

#2.
바위에서 내려오던 중 미끄러졌다. 표면이 많이 거칠어서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물기가 있었나보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발은 바위 사이에 끼었지만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보니 왼쪽 팔꿈치가 많이 긁혀 쓰라리다. 근데 주변을 보니 핏방울이 군데 군데 뚝뚝 떨어져있다. 아픈곳은 팔꿈치뿐이고 피가 주르륵 흐르는건 아닌데.. 이상해서 이곳 저곳 몸을 살펴보니 오른쪽 손바닥에 깊이 파인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다행스럽게 상처부위 지혈은 되었지만 이곳저곳 scratch가 보기 흉하다. 그래도 크게 안다치고 이정도로 다친것에 감사.

6/02/2011

[음악] Old & Wise

젊은 시절 내가 나이를 먹었을때 다시 듣고 싶었던 노래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이유가 이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분명 나이는 먹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현명해지진 못한 것 같다.
조금 더 현명해진 후 나이를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나이가 더 든 후에 다시 들어봐야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현명해져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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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n paesons project

As far as my eyes can see
There are shadows approaching me
And to those I left behind
I wanted you to know
You ve always shared my deepest thoughts
You followed where I go
And oh when I m old and wise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And someday in the midst of time
When they ask me if I knew you
I d smile and say you were a friend of mine
And the sadness would be lifted from my eyes
Oh when I m old and wise

As far as my eyes can see
There are shadows surrounding me
And to those I leave behind
I want you all to know
You ve always shared my darkest hours
I ll miss you when I go
And oh, when I m old and wise
Heavy words that tossed and blew me
Lik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And someday in the midst of time
When they ask you if you knew me
Remember that you were a frined of mine
As the final curtain falls before my eyes
Oh when I m old and wise
As far as my eyes can see

5/27/2011

곪았다 ②

무언가 많은 것들이 자꾸만 곪아가는거 같다. 이런일 저런일 화는 나지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그냥 넘겨버리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자꾸 이건 아니라고 말한다.

상황2. 공권력
야간근무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중인 회사가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지만 일년에 6개월 이상의 야간근무로 인해 최근 1년반동안 5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노조는 24시간 2교대 야간근무를 없애고 주간 연속 2교대를 요청했지만 사측과의 상반된 이해관계로 인해 노조가 부분 파업을 하게되었고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런데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관련 대기업의 생산차질이 발생하고 국가 경제를 해가된다는 명목으로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다.

그리고 언론을 비롯하여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나서서 '연봉 7천만원을 받는 회사가 파업하느냐~'라고 떠들어댄다. 그래. 주변 설명없이 7천만원 연봉 근로자가 파업을? 이런 머릿기사만 보면 누구나 '배부르니까 쌩쑈를 하는군' 이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근로자 연봉 7천만원. 많다고 생각하면 많고 적다고 생각하면 적다.
그 이유는 이회사의 근로자 평균 재직 기간이 16년이 넘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내 주변을 보더라도 직장생활 10년정도했을때 6천~8천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와 비교했을때 16년 재직으로 7천만원 연봉은 과히 많다고 할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실제 이 회사의 근무시간은 주야 2교대 24시간이다. 따라서 그들의 연봉이라는 것을 살펴보니 기본급은 2천만원이 약간 넘길 뿐이고, 야근/특근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으로 나머지가 채워지고 있다. 과연 고액 연봉자인가?

유신이래 군사정권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공권력은 사회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현실의 공권력은 가진자들이 자신의 힘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유물이 되어 버렸다.
점점 옭죄어 오는 검열, 탄압 앞에 누구도 당당해질수 없는 현실이다. 입이 있어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면 속은 썩어간다. 아니 심하게 곪아가고 있다.

5/24/2011

[음악]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2년전 오늘.
마침 찬이의 생일이라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조금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잠깐 시간이 남아 TV를 켰을 때 보고있으면서도 믿고싶지 않은 뉴스특보가 나왔습니다.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흐를뿐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가버렸지만 그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 그 꿈은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숙제로 남았습니다. 숙제 잘해서 나중에라도 칭찬 받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이 노래를 꼭 듣고 싶습니다.

4/15/2011

과연 안전한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유럽의 대응은 정부가 나서서 출하 예정이던 채소류와 유제품을 전량 폐기했다. 막대한 손실이였지만 국민들의 안전이 우선인 그들에게는 당연한 조치였다.
우리는 어떤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극소량이라고 말한다. 직접적인 피해는 절대 없을거라 자신있게 말한다. 방사성 비를 걱정해 휴교령을 내린 교육감에게 '불안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채소류 40건을 수거해 검사를 해보니 미량의 세슘과 요오드가 나왔다. 연근해 어류 8종에서도 세슘이 검출되었다. 제주 빗물에서도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다.
이쯤되면 어떠한 조치나 대응이라도 할만 한데 그런데도 안전 하다고만 한다. 감추려 한다.
시금치 50g을 60년간 먹어도 안전하다고 하고. 빗물 2l를 2년간 먹어도 안전하다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해준다. 친절한 금자씨가 따로없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음식 한두가지만 먹고 사는게 아니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 오르는 반찬의 가짓수가 얼마나 될까? 기본적으로 양념이 많은 밥상이니 어림잡아 20여가지 이상의 재료들이 한끼 식단을 이루고 있을게다.
숨은 매일 쉴테고 물도 자주 마실테고 일년에 최소 한번은 X-ray 찍어주고.. 이 모든것을 다 합산한다면... 과연 안전한건가?

좀 솔직해 졌으면 좋겠다.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국민의 생명보다 원전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확한 조사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면 좋겠다.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짓을 해주길 바랄뿐이다.

3/15/2011

생각의 차이

현재 일본의 사태에 대한 내용은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실시간 접할 수 있다. 내가 본 사실앞에서 나는 너무 무섭고 너무나 불쌍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어떠한 현상을 볼때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생각이 다를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너무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인상이 찌뿌려지면서 막말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내 생각과 다르다고 그게 모두 틀린것은 아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정도껏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보편적 사람들 생각과는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게, 그리고 그들과 한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게 치욕적이다.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사실 그대로, 편파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인간적인 본성에 기대어 바라보는 시각이면 좋겠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무참히 죽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위력앞에 사라져버렸다.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를 이웃들을 불과 몇 분만에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 진정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동정 한번 해줄 수 없을까?
제발 사람답게 사람답게 같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 무서웠던 기억은 다 내려놓고 좋은 곳으로 가십시요..

3/10/2011

극단적 자기표현

세상 어디를 가던, 아무리 행복하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자기표현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본적인 삶의 틀을 만들어 준다면 그 빈도가 줄어들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러겠지.
사고로 죽는 사람들,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래. 그런 상황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왜 그들이 자살이란 마지막 방법을 택했는지 영원히 알수 없을게다. 아마도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직면해보지 않고서는 말이다.
▶▶ 마창대교 전경


'지난해 8월 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 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 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중략)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 경향신문 칼럼 中

전문은 여기로..  

1/12/2011

농장에서..

다 묻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묻힌건 살아있는 돼지뿐만이 아니라 큰형님이 살아온 세월과 가꾸어온 노력들도 함께라는 겁니다.
한번쯤은 옆으로 피해가길 바랬는데 세상은 마음먹은데로 안되는군요.
답답합니다.
저도 이렇게 답답한데 형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건강이라도 챙기셔야 할텐데..

11/25/2010

허장성세 [虛張聲勢]

내가 잘못 들었었는지 걱정했다.
아직 그럴만한 나이는 아닌데 요즘 부쩍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고 느끼니..

http://hani.co.kr/arti/opinion/editorial/450514.html

이걸 찾고서야 '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11/24/2010

데프콘 3

▶◀ 먼저 연평도에서 전사한 장병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진도개 1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데프콘 3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 싶다.
전방에서 현역으로 있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끔씩 총격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니.. 총기 오발 사고라는게 더 맞겠다. (뭐 가끔 장교들이 멧돼지 잡으라고 명령할 때도 있지만..)
물론 언론에 나오지는 않고 실수한 사병은 군기교육대나 조금 심할 경우 영창에 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어떠한 상황(9.11 &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을 알수 있는 경우,
그 상황을 더욱 극으로 몰고 간다면 분명 경제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수익을 얻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7일부터 발생한 외국인의 콜옵션 매도 포지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지..ㅠ.ㅠ

10/08/2010

행복전도사

사회 초년시절 인화원 전사교육 중에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어색한 머릿모양과 녹색, 붉은색 하이컬러로 브릿지 한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연 내내 졸지 않고 즐겁게 경청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몇 년 후 창조관 SVP교육 중 그의 강연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달라지지 않은 특이한 모습에 자신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면서 들쭉 날쭉한 머리카락을 자랑했었다.
내용이야 몇 년 전과 비슷했었지만 다시 들어도 활기차고 열정적인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자기 삶에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이였는데.. 도데체 왜?

그의 강연을 듣고 기뻐하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의 강연으로 가슴뛰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런 허상을 보고 위안을 삼았던 것인가?
정작 자신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정도로 불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행복하게 살아라~ 라는 이중적 가면을 쓰고 외쳤던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에게 있어 그 선택이 가장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아무튼 행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 故 최윤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9/07/2010

[영화] Out of Africa

아주 오래된 영화다. 내가 중학생일때 나왔으니..
하지만 명작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명작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두 배우의 연기력과 대사는 꽤 괜찮은게 많았다.
그 중 한 구절..


카렌: 당신은 떠날 때마다 사냥 여행만 가는 게 아니죠? 그저 떠나고 싶은 거죠?
데니스: 당신 맘을 상하게 하려 했던 건 아니요.
카렌: 그러나 상해요.
데니스: 내가 당신과 있는 건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이오. 난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고. 그런 걸 나에게 요구하지는 마시오. 난 다른 사람 삶의 연장된 부분이고 싶지 않소. 물론 나만의 삶에 대한 대가는 따르겠지. 외로움이라든가, 혼자 죽는 것...... 공평한 거지.

7/05/2010

분갈이

얼마전 여가생활의 하나로 산세베리아 분갈이와 장미 허브 꺽꽂이를 했습니다.
꺽꽂이 한 장미 허브 두 화분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랍니다.
뿌듯합니다.


그런데 주말을 보내고 아침에 출근해서 보았더니,
산세베리아 분갈이 한 4개 화분 중 제일 작은 녀석이 누렇게 죽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뿌리를 완전히 내리지 않은 남은 녀석들도 조금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야 될텐데 말입니다.

5/14/2010

사람을 만든다는 것

누구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똑같겠지요.
내 아이가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우월하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저 역시 찬이가 자라면서 어떤 방식으로 키워야 올바른 것일까 많이 생각해봅니다.
이상적인 방법만으로 아이를 드라이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의 부작용 또한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부모의 무리한 드라이브로 인해 의존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릴적부터 아이의 바램과는 다르게 부모가 아이를 만들어 간다면
성인이 된 후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되고,
설령 결정을 하더라도 온전한 결정이 안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이 아닌 ready-made 인생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어떻게 키우는게 가장 좋은 것인지 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이번 6월 2일 지방선거 후보를 보니,
참여정부 시절 노 전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국운영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포진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한명숙... 노 전대통령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듯이,
"차기 대통령직을 지명 할 수 있다면 한명숙 전 총리를 지명하고 싶다.."
경기도지사 후보 유시민... 노 전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충청도지사 후보 안희정... 노 전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강원도지사 후보 이광재... 노 전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
부산시장 후보 김정길... 노 전대통령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정치인
경남도지사 후보 김두관... '리틀 노무현' 애칭의 이장 출신에서 행자부 장관으로 발탁


사람이 죽더라도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사람뿐이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키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이번 선거는 살아있는 MB와 망자 노무현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