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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014

제주 이주 – 나도 그들처럼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어떤날이라고. 거기엔 조동익이 있다
어떤날은 1989 2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이병우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으로 학위를 받으러 떠나 클래식기타과를 수석 졸업을 했다. 그러는 동안 조동익은 우리 곁에서 홀연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제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와 오랜 음악적 친구이자 정신적 동료인 장필순과 함께 말이다.
그 소식에 난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이제는 제주에 머물고 있다. 
처음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우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사랑하며 살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애월의 2014년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간다.


모두 행복한 2015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30/2014

[음악] 제주 이주 - 애월낙조

참 오래 기다리던 노래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곡을 쓰고 들국화의 최성원이 가사를 붙였다. 하지만 장필순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조동익 스타일은 숨길 수 없는 법.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애월을 노래한다.

10/17/2014

그림 그리기


여행작가학교가 끝나고 informal study 하나를 하고 있다. 바로 'My urban sketching'이란 그룹이다. 2주에 한번 모임이 있다. 아직은 대부분 서툰 손놀림이지만 그래도 서로 격려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다. 물론 나도 멤버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 못 한 불량 수강생이다. 그래도 과제물은 틈틈이 하고 있으니 탈퇴는 안 시키겠지~~ ^_^
이번 주 과제물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 그리기인데 난 얼마 전 선물 받은 오르골을 그렸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게 어린아이 마냥 신난다. 조금 더 연습해서 제주의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 가능할까?

제주 이주 준비 - 나를 허락한 제주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는 300개가 넘는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하보다 육지 사람들이 내려가 만든 게하가 더 많다. 불과 3~4년만에 이렇게 늘어났다. 그만큼 제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현실을 외면하도록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프레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잠시지만 여러번, 제주에 머물며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을 여럿 만났다. 가족과 모두 함께 내려와서 천천히 사는 분들도 있었고, 가족은 육지에 있지만 홀로 내려와 지내는 분도 있었다. 혹은 아직 젊은 친구들은 그곳을 자신의 땅으로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았다. 나 역시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생각만큼 쉽게 움직여지지 않아 늘 힘들었다. 어쩌면 그 긴 시간동안 제주가 나를 허락하지 않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흙을 밟으며 자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지내다보니 정작 아이가 놀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도 고민 내일도 고민뿐이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머물곳을 구한 지금, 이런 걱정은 없다. 다만 이제 그곳, 제주에서 어떤 살이를 해볼까하는 새로운 고민만 있다. 그저 행복한 고민일지는 스스로 자문하면서 말이다.

10/10/2014

제주 이주 준비 - 집 구하기



시작은 단순했다. 편안하게 지내던 회사생활이 갑자기 무료해졌다. 다른 직장을 구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냥 멀리 떠나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냥이었다.
2003. 처음 알아보던 지역은 인간의 생체리듬에 가장 적합한 해발 700m 정도에 자리잡은 곳. 강원도 평창, 둔내 지역이었다. 대략적인 사전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돌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적당한 땅을 찾았고 계약을 하려던 마지막 단계에서 일이 틀어져버렸다. 아무리 가고 싶은 일이라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찬성하던 사람이 마지막 단계에서 결사 반대를 하길래 마음속에서 덮어버렸고 다시 회사를 다녔다. 지금은 그 지역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2008. 일년에 한두 번 다녀오던 곳이었다. 제주였다. 다녀오면 그리워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이젠 내 일을 하고 있으니 움직이기도 편하고 또한 반대할 사람도 없다. 혼자 결정하면 된다. 수 차례 내려가 몇 날 몇 일씩 지내기를 수십 번. 마침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뼈 속까지 느껴졌다. 그때부터 준비를 했다. 적당한 지역을 찾아 돌아다니며 시세를 알아봤다. 나름 계산을 해보고 결정하고 계약을 하려 하면 가격이 달라져있었다. 기분이 나빠 흥정도 안하고 다른 집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계약을 하려 하면 집 값을 올려버렸다. 더럽고 치사해서 알아보던 일을 멈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판단이 틀렸다.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젠 소위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다.
2014. 여전히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미 오를 데로 올라서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 다시 돌아다녔다. 무작정 리사무소, 초등학교를 돌아다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마침내 찾았다. 몇 년 전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나름 마음에 드는 집이다.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8/22/2014

행복한 날

특정한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날이 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행복하기도 하듯이.

바로 오늘처럼!

11/10/2011

수학능력시험

수능일이다. 예전 내가 학력고사를 볼때는 12월이고, 시험 당일은 늘 추워서 '입시한파'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다행스러운건지 요즘은 수능이 11월에 치뤄지니 크게 춥지 않다.
이제 시험은 끝났고 결과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현실은 본인이 노력한만큼 기대한만큼 이루어지는게 많지는 않겠지만, 오늘만은 일년을 아니 지난 12년동안 이 시험을 준비한 모든이들과 그 주변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보낼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고 자신이 가진 달란트 만큼에 만족하기를.. 건투를 빈다.

10/31/2011

고시히까리

직접 수확한 햅쌀이니 먹어보라며 보내주신 고시히까리 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만 형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가 아는 바로는 농장 몇개를 운영하시니 농장주. 양계장을 가지고 계시니 양계장주. 사료 대리점을 몇개 운영하시니 대리점 사장. 밭농사를 해왔으니 농부는 농부인데 이번에는 논농사까지 추가하니 완전농부. 땅에 관심이 많아서 이곳저곳 조금씩 땅을 사고 있으니 땅투기꾼.^^
하지만 그 무엇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전해주니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게 도데체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기위해 노력이 필요한 때!!

10/26/2011

숲체험

아빠와 숲체험 행사를 다녀왔다. 행사주제가 '숲에서 놀자'였다. 광교산 자락에 모여서 몇가지 게임을 하면서 아들과 한나절을 보낸 귀중한 시간이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곳은 가끔 산에 갈때면 지나다니는 길이였는데도 이렇게 다른 목적으로 와보니 전과는 다른 느낌의 공간이였다. 자연속에서 체험하는 행사이니 만큼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뭇잎, 나무가지, 깃털, 열매 등의 재료를 이용하고 돌아올때는 그냥 놔두고 와도 다시 자연이 되어버리니 나쁠게 없다. 준비해간 찰흙으로 곤충을 만들고는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획일화된 콘크리트 속에 묻혀살다가 이렇게 자연에서 느끼는건 또 다를것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어쩌면 잠시 머무는것과 생활의 공간이 되는것은 또 다른 문제일거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할수만 있다면 난 자연으로 돌아가고싶다.

10/13/2011

동전 보관함

외출하고 돌아오면 주머니에 동전이 몇개씩 들어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현금을 쓰는일도 생기기때문이다. 주머니에 동전이 들어있으면 짤랑거리고 여간 성가신게 아니라서 들어오자마자 저금통에 다 넣어둔다.
그런데 내가 쓰는 저금통은 뚜껑이 달린 상자라서 저금통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동전 보관함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릴듯하다.
이렇게 몇달간 동전을 모으다 어느날 열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동전에 놀라고는 하는데, 오늘은 오랫만에 얼마나 들었나 한번 세어보았다.
동전을 세고 있는데 마침 아들이 들어오더니 "와~ 아빠 부자다!" 하는거다.
아들한데 용돈 줘본지도 한참 된거 같아서 기분으로 "한주먹 쥐어봐~" 했더니 기분좋게 웃으며 상자에 손을 집어넣더니만 한움큼을 집어낸다.
예전에는 손이 작아서 조금 쥐었는데 이제는 제법 큰건지 주먹이 묵직할 정도로 집어올린다. (음.. 이거 치사하게 다시 내려놓으라고 할수도 없고..ㅠ)
"아들 저금통에 넣어두었다가 은행에 넣기다~" 말은 했지만 또 지난번처럼 저금통을 털어서 딱지를 사는게 아닐까 걱정이였는데, 자기 저금통에 다 넣고 와서는 "저거 다 모아서 아빠 제주도 또 보내줄께~" 이런다.
이런 기특한 녀석을 두고 괜한 걱정을 한 못난 아빠.. 바로 나다.^^;

9/26/2011

[음악] 새날

누구에게나 새날이 온다.
어제도 새날이였고 오늘도 새날이다.
그리고 다가올 내일도 새날이다. 하지만 단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로 살뿐, 새날이 새날인지 모른다.
오늘만이라도 아름다운 새날을 뜨겁게 맞이해보자. 두팔 가득, 가득~ 벌리고 말이다.

새날이 올거야. 
어여쁜 날개짓.
그 푸른 잎사귀를 물고.
나의 가난한 마음에 날아와 안길..
새날.

9/23/2011

저금통

마루바닥에 저금통이 뒹굴고 있다. 밑뚜껑이 따져있고 구겨진 만원, 천원, 동전들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도둑은 아닌거 같고 아들이 또 저금통에 손을댄 것 같다.
지난번에도 친구가 놀러왔다고 저금통에서 만원을 꺼내들고 300m 떨어진 문방구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카드를 친구에게 사준적이 있었다. 친구에게 선물하는 마음 씀씀이는 예쁘다고 했지만 큰길을 건너야하는 상황과 아무리 자기꺼라해도 저금통을 함부로 열고 마음대로 돈을 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설명해줬더니 다음부터는 안한다고 했었는데 또 그런것같다.
이런 경우는 어찌해야 할까?
따끔하게 야단을 쳐서 다시는 그런일이 없도록 해야하는지 아니면 부드럽게 설명을 해주고 스스로 하지않도록 유도해야 하는게 맞는것인지 고민스럽다.

아무튼 어지럽혀진 바닥을 치우고 저금통에 다시 지폐와 동전을 넣다보니 한쪽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오천원, 천원권이 있다. 다른 지폐는 저금통 입구가 작아 넣을때 구겨졌는데 이것들은 구겨지지 않았다.
무슨 돈일까? 지폐사이를 보니 영수증 한장이 있다. 더위사냥 600원!!
영수증을 보니 상황이 대충 그려졌다.
친구가 놀러왔고 아이스크림 먹자는 말에 냉장고를 봤는데 아이스크림이 없으니 '내가 사줄께'라고 호탕하게 말하고는 저금통에서 만원짜리 한장 꺼내 길건너 마트에 가서 더위사냥 하나를 사고 둘이 나눠먹은거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더위사냥이다. 이건 둘로 쪼개지는데 친한사람한테만 반을 나눠주는 특별한 것.
기특하기는 하지만 아빠와의 약속을 안지킨것은 살짝 야단맞아야 할듯..^^

9/19/2011

팬티

건강을 위해서는 피부호흡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집에 있는 시간동안에는 팬티를 벗어버리고 헐렁한 실내복을 입고 있다. 내가 속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는 남들이 알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어딘가 행동거지가 불편하고 어색한건 사실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정도가 지나고나니 이 상태가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아직 외부에 나갈때면 팬티를 챙겨입지만, 벗어던진 습관이 며칠 안되었는데도 귀찮고 답답한 느낌이다.
이러다 어느날부터 외부에 나갈때도 팬티를 벗어두고 나가게 되는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세상도 이런게 아닐까 싶다. 조금만 바뀌어도 편해질텐데 의식하지 못한채 오래된 습관처럼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고정관념들.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채 그냥 그렇게 따르고 있는 모습들.
이제는 이렇게 쓸데없이 가식적인것들을 벗어던지고 더 나은것을 위해 살아보는건 어떨까? 지금 당장말이다.

9/16/2011

[음악] 공주님

동요같은 서정적인 가사지만 듣다보면 은근히 중독되는 노래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려보던 공주를 기대하겠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전사'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누군가에게는 다가갈수도 없을만큼 간절한 공주겠지만 현실에서는 '무수리'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게다.

자~ 오늘 하루. 스스로 사랑하며 '나는 공주다'라고, 혹은 '나는 왕자다'라는 마음으로 살아보는건 어떨까!

9/11/2011

한가위

한가위 둥근 보름달은 보이지않지만,
고속도로 정체는 좀처럼 풀릴줄 모르지만,
모두가 활짝 웃을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쭉~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8/31/2011

아들과의 여행

지난 몇 년동안 아들이 바다에서 놀아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탓이다. 바다 구경을 해본적은 있지만 철지난 바닷가에서 그저 바다만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그래서 올해는 아들을 바다에서 놀게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과 단둘이 하루 이틀의 여행이 아닌, 몇 일간의 여행은 아직 경험이 없고 아이도 힘들고 나도 힘들지 않을까 망설이던차에 친구가 함께 휴가 가자는 제안을 했다. 마침 제주도에 친한 삼촌들도 모여있다는 소식에 바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출발~
숙소를 정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월정리 해변으로 나갔다. 아직은 해수욕을 할만한 포근한 날씨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한적하게 아이들만 놀수 있었다.
모래성도 쌓고 바다에 첨벙거리는 모습을 보니 흐믓할뿐이다.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류를 들고는 기뻐하는 모습이나 갯바위에서 게와 보말, 거북손을 따는것도 신기해한다.
제주도에 왔으니 배를 타고 우도도 한번 들어가야겠기에 서빈백사 해수욕장으로 달려가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모래사장에서 썬텐을 한다. 썬텐이라고 하기에는 햇볕이 너무 강해서 지쳐 누워있었다고 해야하나..^^

휴가가 끝난 친구가 먼저 올라행가고 숙소를 옮겼다. 한곳에 3일 머물렀으니 다른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는것도 좋을듯해서다.
하지만 예쁜 곳, 신기한 곳을 구경만 하는것은 아들 입장에서 조금 지루할것 같아 큰맘먹고 물색이 좋기로 유명한 쇠소깍에서 누드카약을 타본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카약을 타고 30분을 도는데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작은 카약에서 장난치는 녀석들 덕분에 등에 식은땀이 주루룩 흐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닥에 붙거나 튀어오르는 물고기며 파란 물에 손을 담그며 재미있어 한다.

숙소 마당은 넓어서 좋았다. 마당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뒹굴며 놀기도하고, 간이 수영장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뛰노는 아이를 보니 역시 아이들은 자연속에서 에너지를 얻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당 주위에는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한 유실수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서 배, 무화과를 바로 따서 먹는것도 일품이였다. 겨울에 오면 귤을 마음껏 따 먹어도 좋다는 사장님 마음씨도 곱다.

매일저녁 바베큐와 회를 푸짐하게 먹고 5박6일간의 늦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아빠. 다음주에 또 가자. 내 통장에 돈있으니까 다음주에 또 가자!"
그래 아들. 다음주는 아니더라도 다음번에 또 함께 가도록 하자.

아직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이 이제는 별부담없이 함께 배낭하나 메고 떠날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는게 고마울뿐이다. 고마워 아들~ 그리고 함께 놀아준 친구, 삼촌, 형아 누나들 고마워~

8/25/2011

한뻠 자라기

아들과 여행을 준비합니다.
하루 이틀의 여행은 경험이 많지만 긴 여행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잠자리가 편하지는 않더라도, 가는길이 곧고 평탄한길은 아니더라도 아들 손 꼭잡고 많은 경험과 추억을 얻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들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한뻠정도 더 자랄거라 저는 믿고있습니다.

이제 출발합니다~
잘다녀오겠습니다.

8/22/2011

급류타기

한낮의 햇살은 아직 여름을 붙들고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들녘은 아직 황금물결은 아니지만 벼이삭은 대부분 패여있고 포도가 알알이 영글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여름이 가는게 아쉬워서 아들을 앞세워 주말농장으로 향했다.
농장 근처 가까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으니 일단은 농장일을 마쳐야한다. 오늘의 목표는 김장용 배추 120포기 파종이다. 일손이 모자라 넓은 뒷밭에는 어른키만큼 자란 풀이 뒤덮고 있다. 먼저 낫으로 풀을 베고 땅을 일구고 돌을 고르고 살충제를 뿌리고 검은 비닐을 덮은 후 40cm 간격으로 배추 모종을 조심스레 심어본다. 배추 가격이 고공행진인데 잘 자라서 올겨울 김장걱정은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정도 작업을 끝내고 계곡으로 달려갔다.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린것치고는 예상보다 계곡물이 많지 않았지만 깨끗하다. 출출하니 먼저 백숙 한마리를 주문하고는 바로 물에 들어가 시원한 물놀이를 한다. 아들과 함께 에어베드를 물에 띄워두고 물위에 누워 파란하늘을 함께 쳐다 보기도하고, 물살이 있는 곳에서는 래프팅도 해본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굽이치며 흘러가는게 살짝 무섭게 보였지만 아들은 신나서 '한번 더~'를 연신 외친다. (하류에서 물에 젖은 에어베드 다시 들고 올라오는 나는 헉헉..^^)
이렇게 우리의 여름은 재밌는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

8/19/2011

[음악] 쥬브수영

나의 아침을 깨워주는 알람이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쥬브를 타고 물속에서 발을 파닥거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병우의 연주곡.

8/11/2011

강남에 산다는 것

나 자신을 돌아본다. 참 개인적이었다. 좋은말로하면 ego가 강한것이고 나쁜말로하면 selfish다.
몇 일전 20년지기 친구와의 밤늦은 대화속에서 '넌 참 개인주의였어'라는 말을 들었다. 조금 충격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정확히 봤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지적하는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바르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누구나 스스로는 어떤지 잘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내 개인주의도 그렇게 많이 심하지는 않았구나 위로한다. 아직 친구인걸보면 말이다.

'개인주의'라는게 타고난 심성도 있겠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향도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이였던가 모대학 교수로 있는 친한 형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강남'이라는 동네와 사람에 대한 토론을 한적이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를 보면 강남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사회에서 최소 '실장', '본부장' 같은 위치에서 어마어마한 저택에서 살지만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자주 묘사된다.
어릴적부터 유명 학원이며 개인과외를 받으며 부모가 만들어 놓은 길만 따라가다 보니 명문대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그러다 부모님 재산을 물려받거나 사업체를 물려받아 잘 살지만 세상물정은 잘 모르는 철부지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주위를 돌아보니 이런 그들이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것이 인간미는 별로 없지만 최소한의 교양과 지극히 편향적이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어 강남에서 자란 사람은 대부분 모든면에서 '적당히 괜찮다'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주위를 돌아보니 그리 틀린말은 아니다. 연락되는 초중고 친구들이 몇명 남아 있지는 않지만 건너건너 소식을 들어보면 부지기수로 유학은 다녀온 박사고, 의사나 판검사고, 아버지 사업체 물려받아 사장인 녀석들도 많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자리잡고 성공한 축에 든 녀석들을 보니 '강남예찬'이 완전히 틀린말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무언의 동의는 하지만 직접 강남에 살아본 나로서는 좀처럼 수긍하기 어려운면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쭉~ 강남에서 자랐던 나는 왜 아직도 강남이란곳에 거부감이 있을까?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태어날때 은스픈을 물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생각이 더 강하다.
열심히 일하신 부모님 덕분에 강남에서 살게되고 겉치장은 했지만 정작 그 강남이라는 사회속에 흡수될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강남은, 부와 권력이 지배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강남의 주류였다면 나 역시 생각이 달라질수도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강남의 비주류였다.
자기방어적인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화속에서 오랜동안 머물다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개인주의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위로해 본다. (지독한 자기 핑계일수 있다)

강남에서 산다는 것.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고 옳고 그름을 따질수는 없는 일이지만,
대다수가 자기 감정에만 충실하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곳이라면,
나 역시 그곳에 살면서 보고 배운게 이런것뿐이라면,
나는 '강남'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류이건 비주류이건을 떠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