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2011

[시] 행복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는 누구나 시인을 꿈꾼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one of them.
신문사 신춘문예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고(소식은 없었지만), 교내 신문에 몇 번 실리기도 했고,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스승님께 칭찬을 받은 기억도 있다.
그러다 개인 시를 모아 혼자만의 출판이라도 할 요량으로 책 한권을 만들었었다.
문득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해 책장을 다 뒤져보았지만 안보인다.
몇 번의 이사, 몇 번의 정리를 하는 동안 사라져 버렸나보다.

책 한권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보다 내 과거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하루..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행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울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족하였네라.


                                          - 유치환

[시] 공존의 이유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시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현 듯 생각이 났다.

하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시인 조병화씨를 좋아하지 않게되었다.
친일이라는 것 이외에도 5공을 찬양하는 일을 앞장서서 했으니..
시절이 하수상하여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들의 몫일뿐이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필요는 없다.
비슷한 연유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많은 문인들을 버렸다.
김지하, 이문열씨 역시 마찬가지로..

하지만 사람은 버려도 글은 버리지 못했다.
그만큼 어린시절 감수성을 녹여버릴만한 강렬한 구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눈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 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에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 날이 오면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 조병화

2/24/2011

동해안

오랫만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얼마전 수술한 조카와 큰형수님을 제외한 나머지 우리 가족들.

숙소는 홍천 비발디로 잡았지만 일단은 동해바다를 보기로 했으니 속초로 곧장 달려갔다.
미시령 터널이 뚫려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예전과 같은 아기자기함은 없었다. 속초 근처에서 회를 먹으려면 일단 장사항으로 간다. 조금 늦은 점심으로 복어회와 장치회로 배불리 먹고 가까운 해변에서 아이들은 놀고, 형님과 나는 가까운 갯바위에서 다시마와 미역을 좀 채취했다.
다시마를 찾아 돌아다니다 갯바위에 넘어져 손바닥이 좀 상했지만 그래도 다시마는 비닐 한봉지 가득 채웠으니 맡은바 임무(?)는 완수.
돌아오는 길 속초 수산물 시장에서 문어/섭/소라/가리비/백합/각종 조개를 사고 간식거리로 건어물과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늦은밤까지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다.

다음날은 오션월드에서 반나절 신나게(피곤하게) 놀고는 야간 스키를 타러 갔다.
한 6년만에 타는 스키였지만 아직은 탈만했다. 평일이고 야간이고 상급자코스라 사람이 없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곤돌라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신나게 내려 달렸는데 오랫만에 느끼는 속도감에 오감이 짜릿하다.

일년에 한두번씩 다니는 가족여행.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회를 만들어 다닐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니 그럴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소중한 가족들이니까..

▶ 조그만 해변가에 내발자국.. 2011.2

2/17/2011

임상실험 결과

지독한 테스트 구간이였지만 나름 큰 문제없이 견뎌준  내 몸과 정신에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주인을 잘못 만난 내 장기들에게 미안하고 특히나 극한의 고생을 경험한 간과 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78일간의 알콜 테스트를 마치려고 한다.
몇 일정도 더 할 여력은 있지만 더이상 큰 의미가 없고, 또 내 절친 녀석의 젊은 시절 대기록(?)을 깨는것도 의리가 아닌듯하여 여기까지만 하려한다.
살아가면서 또 다시 무모한 테스트를 할 일은 없을테니 앞으로는 좀 더 가볍게 즐기면서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동안 나를 위해 온몸을 비워준 수많은 친구들 소개하면,
Ballantine17&21y, Glenlivet15&17y, Glenfiddich 15&17y, Blanton's, Vodka 같은 외국 친구들.
이슬양, 진도홍주군, 한라산, 포천/장수/배상면/제주탁주 같은 국내 친구들.
카스/맥스/하이네캔/벡스/사무엘 아담스/무스헤드 같은 소프트한 친구들이 있어 그저 고마울따름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덕에 내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한다.
아침마다 얼굴이 붓고 혓바늘과 잇몸병이 안 없어진다. 몸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목은 마르고 칼칼하고 바튼 기침이 난다. 가슴은 답답하고 아랫배는 묵직한 통증이 조금있고 얼굴이 까칠하고 혈색이 안좋아졌다. 입술은 바짝 말라 트고 혈변이 보였고 단기 기억 상실이 생긴게 다다. 그래도 이정도면 참 양호한 수준이 아닐까?

처음 시작은 개인적인 힘듬이었다.
그러한 힘듬을 알콜을 통해 잊고 싶은 생각, 혹은 자기학대를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 했던게 크다. 하지만 이런 돌발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잊혀지거나 해결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맞닥드려 해결하고 풀어야할 숙제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모든게 다 해결되고 정상으로 돌아온건 아니다. 살다보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무지고 회피일뿐이다. 껄끄러운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안된다. 스스로 정리하고 마무리를 해야지만 더 큰 탈없이 지나가는 것이다.

솔직히 그간 정신을 차리건 안차리건 상관없이 내 주변의 일들은 나락으로만 향했다. 방향을 정해줄 사공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현실, 내가 만들고 내가 망쳐놓은 그 현실 때문이었다. 바로잡으려 해서 바로잡히는 일들이라면 무모한 일은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았을테니.. 역시 현실도피가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사실들을 그냥 받아드리려 한다. 그냥 받아들이고 곪아서 터지던, 도려내던, 맞장뜨던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 어차피 태어날때부터 누구나 혼자였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절반은 큰 무리없이 흐르는데로 나를 맡기고 조금씩만 방향 조정을 했지만 이정도 살아왔다. 이제 절반정도 남은 EOL.
어찌되었던 책임져야 할게 늘어나고 감당해야 할 무게가 조금 더 많아 지기는 했지만 헛되게 살아오지 않았기에 좀 더 강하게 마지막 장을 드라이브 해 보기로 다짐해 본다.

Life is a garden. You reap what you sow.
When you find your path, you need to have sufficient courage to make mistakes.

    - P.Coelho

2/14/2011

[음악] I don't know enough about you

나이는 좀 들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아직까지 사랑할만한 Diana Krall.
작년에 Paris에서 라이브 공연이 있었다.
초반부 Piano로 애간장을 녹이다가 4분을 지나면서 Guitar가 애를 태우더니 8분이 넘을 무렵 Drum으로 숨넘어 가게 만들며 깔끔한 마무리.
음반에 있는 음악은 조용한 저녁에 분위기 잡을때 사용하면 좋을듯하지만 직접 라이브를 듣는것도 색다른 매력이다.

[음악] 매

갑자기 이게 듣고 싶었는데 LP로만 있는 답답한 현실속.
다시 한번 웹 세상을 감사하며..

기타소리 참 좋다~ "너에 하늘로 후~~"

짧은 여행, 제주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내자리로 돌아왔다.
늘 그렇듯 내 여행은 준비없이 시작된다. 그냥.. 홀연히 말이다.
물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바람을 맞고 일상과는 다른 풍경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서는 심한 가슴앓이를 하게된다. 아마도 내 역마살이 다시 현실과 부딪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여행 역시 사람들을 만났다.
국악 호혁, 간호사 지혜, 사회복지사 영미누님, 사서 이든, 구미 진호, 트레이더 해웅, 예비 의사 아무개, 고등학교 졸업하는 다은, 14일 군입대하는 친구, 요양온 친구, 일상탈출팀, 낙지마당 단골손님, 설겆이 먼저 해주시던 이모님들, 들살이 선생님, 몇몇 할망&하르방..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얼굴들.
도시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분야와 연령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밤새워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앙금도 남지 않는 깔끔함..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될수 있는 따뜻함이 있을 수 있어 좋다.
이런 경험을 하고나면 아직은 이 세상도 따뜻한 곳이고 좀 더 살아볼만 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십대 초반부터 시작한 여행길인데 해가 바뀔수록 조금씩 조금씩 위축(?)되는 나를 보게된다.
10대 시절은 어디를 가도 다 형님, 누님들뿐이라 어린 동생처럼 살갑게 반겨 주셨고, 20대가 되어서는 적당히 어울리는 친구들이 많았고 서른초반 정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중반정도부터는 조금씩 generation gap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내가 '아저씨', '형님'이 되어버린다!!
다만 스스로 위안을 삼는것은 몇 년전부터 점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관광'이 아닌 '여행'을 오시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처럼 난 계속해서 '여행'을 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옭아맨 내 생각을 계속 깨버리면서 말이다.

2/13/2011

[분석] 2,000p 붕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왔더니 엉망입니다.
옵션만기일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달은 그리 큰 이벤트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제가 틀렸고 외인들이 작품을 하나 만들었놨습니다.
종가 동시호가에 4,800억 매물 폭탄이 나왔고 전체적으로 1조이상의 매도에 따른 급락이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약간은 당황스럽지만 어차피 그동안 고평가 받던 대형주 위주 하락이였기에 CA 펀드는 그저 담담할 따름입니다. 기회일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남은 2월도 좀 쉬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어차피 멀리 가야하는 길이기에 개인적으로 문제였던 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재충전하면서 다시한번 도약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더 철처하고 치열하지만, 마음 편한 자립을 할수 있는 준비의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01/2011

[분석] 위안화절상과 내수시장

중국의 위안화 절상과 내수시장의 관계에 대해 고민중이다.
위안화는 작년 10월 한차례 기습 인상을 했지만 기습이라는 의미가 무색할만큼 파급효과는 크지 않았다.
GDP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기대치를 웃돌고 있으니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하고 아직 낙후되어 있는 서부지역에 대한 개발과 더불어 2,3선 도시개발에 따른 균형발전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지만 워낙 넓은 땅덩어리라 쉽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수는 없는 상태고 나온다해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각설하고 조만간 위안화 절상이 필연이라면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떨어질것이고 위안화의 구매력은 높아지며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 소비가 늘어나면 기업의 투자활동이 늘어나게 되고.. 이론적인 시나리오는 이렇지만 과거 일본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이론대로 가지는 않았다는게 문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정상적인 경우라면 내수시장의 파이는 늘어날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발생할 일들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앉아서 기다리기 보다는 한발 앞을 내다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 그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