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2011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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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뵌적은 없지만 참 좋은 분께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먼저 좋은 곳으로 가신 그분 어머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고 안녕히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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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실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위독해 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셨고,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가 본 아버지는 반 의식이 없는 상태셨다.
의사는 우리를 불러 지금 삽관술을 한다면 생명 연장이 가능하지만 그대로 둘 경우 하루를 못 넘기실거라고 했다. 하지만 삽관술을 하게 된다면 강제 수면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하루에 두번 면회만 가능하다고 했다.

살면서 이런 순간, 이런 결정을 해야하는건 늘 두려운일이다. 나의 결정에 의해 어떤 존재의 상태가 변화되어 버리는 것,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리거나 못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게 전능한 결정권을 가진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혈관을 찾기위해 손이고 발이고 관자놀이를 다 찔렀는데도 혈관은 잡히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사타구니의 정맥에 주사바늘을 찌르고 있는 순간이였으니까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렇게 보내 드릴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지만 우린 삽관술을 안하기로하고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 호흡이 조금 안정되시며 정신을 차리셨고 병실로 옮긴 후 우리들과 며칠동안 이야기도 하면서 계셨다. 그리고는 어느날.. 가셨다. 응급실에 실려 오신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다.
평생 깔끔한 분이라 마지막 숨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스스로 용변을 보시고 돌아와 자리에 누우셨는데... 뚜뚜뚜뚜 뚜~~~~~~ vital sign도, 모든 기계장치도 멈췄다. 그것이 끝이였다.

지금은 오래전 일이라 담담하게 말할수 있다. 만약 그때 삽관술을 했다면 어쩌면 지금도 아버지는 살아 계셨을지도 모른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하지만 우린 아버지와 같이 호흡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감사한다.
아버지도 그런 우리를 이해하셨으리라 믿고싶다.

누구나 살다보면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원하던 원하지않던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후회는 지울수 없는 문신처럼 평생 따라다닌다. 그것이 잘한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6/23/2011

관음증과 노출증

SNS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수도 있다.
혹자는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경우도 있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시간 습관적으로 필터링없이 마구 올린다. 이런 경우라면 노출증이라고 할만하다.
또 자신의 상태는 대부분 친구의 친구까지 공개를 하는데, 그 친구의 친구가 오래전 헤어진 애인이라던가 짝사랑하던 상대였다면, 그런 이유로 친구 대 친구의 신청은 못하면서 상대방의 상태를 끊임없이 들여다 본다면 이건 관음증이라 할수도 있겠다.

세상 모든것에는 부작용이 있는것처럼 SNS 또한 이런 부작용이 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만을 보고 그것이 '나쁘다!'고 판단하는건 아니라고 본다.

SNS가 주는 긍정적인 면은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목적보다는 멀리 해외에 있는 지인들이나,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보다 쉽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상태를 봐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본다면 SNS의 부작용은 긍정적인 면과 충분히 상쇄된다고 본다.

SNS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 원인이 본인과 세상과의 엇박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모든것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스스로에게서 찾아본다면 조금 더 현명한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로빈슨크로스 신드롬처럼 안으로만 안으로만 기어들어가 숨고 외부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 또한 바람직하지 않기때문이다. 물론 이런 문명의 이기보다 주변 지인들과 자주 연락하고 직접 만난다면 당연히 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은 그러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아닌가.
그렇다면 과하지 않게 적당히 유지하면서 지인들의 사는 모습과 현재의 생각들을 공유한다면 더 없이 바람직한 세상과의 소통도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SNS를 노출증이나 관음증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사상을 나타내는 이런 블로그는 더 심한 노출증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블로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조금더 깊게 숙고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적어두는 곳일테니 말이다.

어떤것이 더 옳고 그른지에 판단보다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가져보자.

6/21/2011

들어오는길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 노래가 절로나온다.
그것도 3개나...
1.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일지라..
(오늘 폭염주의보라서 생각났나? 하지만 난 이 노래를 이렇게 부르는데..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심장일지라~")
2. 바람이 분다.. 세상은 어제와같고.. 나는 이렇게 달라져있다..
(어떻게 달라져있는지 나는 못보지만 나를 아는 지인들의 눈에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두렵다)
3. 이럼 다시 숨막힐듯해~
(지금까지 숨을 많이 참았으니 숨쉴만도 하건만.. 가장 쉽고도 어려운게 숨쉬는게 아닐런지..)
늦은 시간이지만 목청껏 노래부르고 싶은 밤.

6/20/2011

의미가 없다는 것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보다
버려지는 것보다
죽어버리는 것보다
더 서글프고 비참한 일.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6/16/2011

[음악] 크게 라디오를 켜고

시나위 시절 임재범의 목소리와 지금의 임재범 목소리를 비교해본다.
노래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어 같은 노래를 들어봐야 보다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있을 듯하여 25년전 앨범과 2004년 라이브 공연을 올려본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허스키하면서 쇠소리나는 묵직한 고음부의 울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저음에서는 현재의 목소리가 더 안정적이다.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 건가? 호흡이 많이 짧아졌다는 생각이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는걸까?



6/15/2011

before & after 2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이제는 혼자서 놀이터에 나가 노는 아들이 뛰어 들어왔는데 땀을 뻘뻘 흘리는게 너무 더워보인다.
원래 땀이 많은 녀석인데다 머리가 좀 덥수룩하니 더 더워보인다. 이발소를 데려갈까 하다가 오랫만에 집에서 깍아보기로 한다.
늘 단정한 머리만을 고집하다가 이번에는 약간의 샤기 스타일로 해주려고 하는데.. 짜잔~

6/14/2011

우유식빵

마트에서 일용한 양식을 가득 구입하고 냉장고 앞에 섰다. 새로운 양식을 채우기위해 일단 냉장고 속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기존의 양식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다보니 구석에서 오래된 우유식빵이 나왔다.
날짜를 보니 4월말에 롯데마트 베이커리에서 구입한 빵이다. 한달 반이나 지났으니 당연히 곰팡이에 맛이 갔겠지 생각하고 손가락 두개로 살포시 꺼냈는데 왠걸.. 그대로다. 묶인걸 풀어 슬쩍 냄새를 맡아보니.. 어라 그대로다.
한달 하고도 반이나 지났건만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이걸 먹으면 죽어도 죽지 아니하고 썩어도 썩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다른 베이커리는 실험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일단 롯데마트 베이커리 빵은 한달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는 고급정보 하나! 쿨럭~

상영등급

오랫만에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나 한편 볼까하고 가까운 극장에 갔다. 널찍한 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밝은 모습으로 팝콘이나 음료를 손에 들고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앉아 기다리는데 몇몇 커플은 무릎에 앉아서 서로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도 솔찬히 보인다.
이런 행동을 비난하는건 아니지만 주변에 아이들도 많은데 조금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이런걸 뭐라 그러면 구세대라고 하겠지만 구세대,퇴물 취급을 받더라도 지적할 건 지적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남을위한 최소한의 배려니까..
한쪽 구석에는 3D관련 체험 부스도 있었다. 스마트TV, 3DTV 마케팅에 열심인 기업에서 설치해두고 체험을 유도한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해도 3D display는 CES나 CeBIT, KES에서나 볼수 있었던 것들인데 이제는 가정에서도 볼수 있으니 기술 발전이 빠르기는 빠르다.
몇 번 3D영화를 봐서 그런지 별 거부감 없이 한참을 재밌게 들여다 보는 아들.

입구 전광판에는 'CGV는 영화 상영등급을 준수합니다' 라고 적혀있다.
갑자기 어릴적 동네 3류영화관의 동시상영이 떠올랐다. 500원이면 영화 2편을 볼 수 있었던 시절. 그때는 저런 상영등급이 따로 없었는데..^^

아이들 영화라서 그런지 가족동반이 많고 48개월 미만의 어린이는 좌석 배정없이 무료입장도 가능하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런타임 1시간 30분 중 광고와 예고편을 20분간 틀어준다. 아들은 벌써 지겨워한다. '언제 시작해?'
내가 느끼기에도 너무 길다. 영화 상영전 광고 몇 편은 이해가 가지만 런타임1시간 30분중에 20분을 광고로 채우는건 너무 심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경우가 생겼다.
분명 영화는 어린이도 볼수 있는 '전체관람가' 인데 광고나 예고편은 '청소년 관람불가' 혹은 '19금' 예고편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거다. 총쏘고 싸우는건 기본이고 up-skirt에 선정적인 장면들이 여과없이 보여진다.
이게 정상인가? 가능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다. 영화가 끝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찾아봤더니 문화체육관광부의 답변이 더 가관이다.

『영화예고편은「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제29조 제2항에 의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상영등급을 받아야 하며, 
현재 영등위는 영화예고편은 모두 전체관람가로 등급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으나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하겠다는 말뿐이다. 아무리 광고 수입료와 상영 예정작에 대한 홍보도 필요하지만 겉으로만 고상한척하고 뒤로 호박씨 까는짓은 안했으면 좋겠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런 장면들을 당신의 어린 자식들도 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다들 조금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6/13/2011

주말 사건

#1.
새벽 고속도로에서 1차선을 달리던 중 전방에 고라니를 발견했다. 정말 급하게 핸들을 꺽어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차는 좌우로 휘청, 등골은 오싹. 아마도 옆차선에 다른 차라도 있었다면 100% 충돌이였고, 만약 핸들을 1cm만 더 꺽었더라면 차는 전복되었을거다. 시속 140km/h 전후였으니.. 어찌되었건 나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1차선에 있던 그 녀석은 집으로 잘 돌아갔는지 걱정.

#2.
바위에서 내려오던 중 미끄러졌다. 표면이 많이 거칠어서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물기가 있었나보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발은 바위 사이에 끼었지만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보니 왼쪽 팔꿈치가 많이 긁혀 쓰라리다. 근데 주변을 보니 핏방울이 군데 군데 뚝뚝 떨어져있다. 아픈곳은 팔꿈치뿐이고 피가 주르륵 흐르는건 아닌데.. 이상해서 이곳 저곳 몸을 살펴보니 오른쪽 손바닥에 깊이 파인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다행스럽게 상처부위 지혈은 되었지만 이곳저곳 scratch가 보기 흉하다. 그래도 크게 안다치고 이정도로 다친것에 감사.

6/09/2011

난 정상인가?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handicap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를 뭐라고 부를까? 정상인?

언어라는게 쓰이는 곳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非'자는 말 그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비정상, 비주류, 비인간적, 비생산적, 비공식적 .. 무언가 벗어난 느낌이고 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

장애인들은 우리를 非장애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그들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非'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우린 非장애인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이 우선이다. 그들의 눈에는 분명 우린 非장애인이다.
다만 우리도 장애우를 볼때 제발 非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들 누구도 자신이 정상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6/08/2011

선택과 집중

실용적 비관론의 견해로 보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낙관적 실용주의 견해는 '앞으로 나아가려면 희망을 포기하지 마라' 고 말한다.
무엇을 택하든 본인의 몫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길을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과거는 과거일뿐 앞으로의 미래가 더 중요하므로 앞만 보고 전진하는 사람도 있다.
두가지는 완전 상반된 견해이지만 틀린건 없다. 이들은 다를뿐이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 본인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못하는것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현재 잘하고 있는 것을 더 발전시키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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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는 신화속의 개념이다. 파라다이스는 개인의 한계라는 무자비한 현실에 훼손되어 버렸다. 일상에서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파라다이스의 개념을 망가뜨렸다. 누구나 신화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자랐다. 열심히 노력하고 끝없이 낙관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는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손에 쥐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 A Special Relationship 中

현명함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맘에 드는 물건을 보고 가격적인 면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당장은 눈앞에서 열리는 지갑이 부담스러워 그냥 저렴한 것을 사가지고 오지만 사용하는 내내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
약간 비싸더라도 그냥 맘에 드는 물건을 사고 두고두고 쓰면 기분도 좋고 만족스러운걸 알면서 왜 늘 고민하는걸까.
현명함이 늘 늦게 찾아오는게 문제다.

6/02/2011

곪았다 ③

상황3. 전세값, 집값
작년말부터 집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따라오고 있고 하우스푸어(house poor)라는 신조어가 유행한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실상 우리나라는 2002년에 이미 주택보급률 100%를 넘었고, 2009년 주택보급률은 111%를 넘었다.(국토해양부 통계자료) 산술적으로 111%라는 의미는 1가구 1.11주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내 집을 가지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집마련을하고 적게는 월 4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을 대출이자로 지불하고 있다. 순수 이자만 말이다.
이런 경우 '내 집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찌보면 집주인은 금융권이고 본인은 200만원짜리 월세를 살고 있는건 아닐까? 그래 진정한 하우스 푸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집은 누가 다 가지고 있는 걸까?

자기 소유의 집은 둘째치고 전세 상황을 보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말부터 올초까지 내가 보고 들은것만 나열하자면 강남 모 아파트 전세는 2년전 3억에서 올해 4억5천으로 올랐다. 서울 주변 아파트들을 보면 분당은 2.1억에서 3.0~3.2억으로, 수지는 1.2억에서 1.9~2.0억까지 올랐다. 2년만에 50% 이상 상승했다. (30평 전후의 주택)
특별한 이유로 현금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전세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보면 2년만에 1억 이상을 마련해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연장할 수 있는데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59%에 육박하니 그냥 집을 사버려? DTI 40% 적용하면 2년마다 전세 연장하거나 이사하는 수고로움없이 집을 장만해 버려? 이 또한 새로운 하우스푸어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전세금 대출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뾰족한 방법이 안보인다.
정말 그 많은 집은 누가 다 가지고 있는 걸까?

출산률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자랑한다.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이고 주택 보급률은 높아가는데 가계대출은 800조원을 넘어 버렸다.
부자감세를 통해 이미 1조2천억의 세수가 줄었고, 기업 법인세 인하로 대기업의 배만 가득 채워주면서, 중소기업(허울 좋은 표현으로 협력업체, 실제로는 하청업체)은 IMF 상황보다 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물가상승도 통제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4.2%, 2011년)하고 있지만 금리인상을 과감히 단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 강.부.자, 고.소.영에게 혜택을 다 주지 못한건가?
한때 가계대출 한도를 늘려주면서, 돈 빌려줄테니 집 사라고 부추기던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PF대출 상환이 안되서 부실의 늪에 빠져있는 금융권, 약자에게 강한 금융권에게 가장 만만한게 서민 주택담보 대출이었으니까.
어찌되었건 부실 저축은행 몇 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그 여파로 아직 피눈물 흘리는 서민들이 있고( ▶몰랐던 일들 ) 상위 금융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곪은것은 과감히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다.
어차피 모든게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간다. 한쪽만 더 거대한 톱니바퀴로 만들려 한다면 다른쪽은 점점 작아지다 끝내는 전체적인 메커니즘이 깨어져 버린다는걸 알기바란다.
새 살이 돋아 날때까지는 오랜기간 아프겠지만 도려내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 큰 댓가를 치뤄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과감한 결단으로 메스를 들기를 바라며..

얼마전 늦은 저녁 택시기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집값만 안정되고, 살집만 있다면 먹고사는거야 걱정없잖아. 그러면 지출도 늘테고 경제도 좋아질텐데.. 참 그걸 못한단말야'
그래. 모든 사람이 알고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왜 한쪽으로만 치우쳐 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자본주의의 진정한 본질일까?

[음악] Old & Wise

젊은 시절 내가 나이를 먹었을때 다시 듣고 싶었던 노래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이유가 이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분명 나이는 먹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현명해지진 못한 것 같다.
조금 더 현명해진 후 나이를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나이가 더 든 후에 다시 들어봐야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현명해져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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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n paesons project

As far as my eyes can see
There are shadows approaching me
And to those I left behind
I wanted you to know
You ve always shared my deepest thoughts
You followed where I go
And oh when I m old and wise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And someday in the midst of time
When they ask me if I knew you
I d smile and say you were a friend of mine
And the sadness would be lifted from my eyes
Oh when I m old and wise

As far as my eyes can see
There are shadows surrounding me
And to those I leave behind
I want you all to know
You ve always shared my darkest hours
I ll miss you when I go
And oh, when I m old and wise
Heavy words that tossed and blew me
Lik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And someday in the midst of time
When they ask you if you knew me
Remember that you were a frined of mine
As the final curtain falls before my eyes
Oh when I m old and wise
As far as my eyes can see

6/01/2011

친구

멀리서 친구가 놀러옵니다. 친구가 많은편은 아니지만 오래된 친구들은 몇 명 있습니다. 한 20년이상된 친구라면 반평생 알아오던 사람들이니 오래된 친구라고 할수 있겠지요.
사는곳이 같다면 일년에 몇 번은 볼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대라서 그런지 많이들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그러고보니 다들 큰 나라에서 살고있네요.
이 친구는 중국에서 살고있는 친구입니다. 가까운 상하이에 살고 있으니 가끔 놀러오라고 하는데, 제주도만큼 가까운 거리인데도 가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한 이틀만 짬을 내서 다녀와도 되는데 왜 못하고 있을까? 나름 생각을 해보니 여유가 없네요. 시간적인 여유보다는 심적인 여유말이죠. 
하루중 차를 마시고 텔레비젼을 보고 책을 읽고 잠을 자는 시간을 따지고 보면 몇시간이나 되는데 하루 이틀 여유를 부리는건 사치처럼 느껴지니 참 어렵습니다. 모든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중에서 짬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있으니 이제부터는 가까이에 사는 친구부터 먼저 챙겨보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더 늦기전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