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2014

제주 이주 – 나도 그들처럼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어떤날이라고. 거기엔 조동익이 있다
어떤날은 1989 2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이병우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으로 학위를 받으러 떠나 클래식기타과를 수석 졸업을 했다. 그러는 동안 조동익은 우리 곁에서 홀연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제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와 오랜 음악적 친구이자 정신적 동료인 장필순과 함께 말이다.
그 소식에 난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이제는 제주에 머물고 있다. 
처음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우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사랑하며 살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애월의 2014년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간다.


모두 행복한 2015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30/2014

[음악] 제주 이주 - 애월낙조

참 오래 기다리던 노래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곡을 쓰고 들국화의 최성원이 가사를 붙였다. 하지만 장필순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조동익 스타일은 숨길 수 없는 법.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애월을 노래한다.

제주 이주 - 학교 이야기

학교가 숨을 쉰다. 아이들이 학교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학교가 아이들을 맞춘다. 도시에서 매달 내던 우유 대금이 여기에서는 필요 없다. 학교 급식이 아주 맛있다고 한다. 방과 후 수업 중,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학교에서 제공한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고, 만 오천 원이다. 영어교육은 또한 어떠한가. 원어민 한 명과 보조교사 한 명이 참여하고 학기 중에는 주 3, 방학 중에는 주 4회 수업을 한다. 물론 공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사소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것들을 누리며 이곳 제주에 머물고 있는 현재가 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난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희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꺼내자. 마음속에 담겨 있는 그 희망 하나 하나를...

12/09/2014

제주 이주 - 마을 사람들

집 앞 양배추밭 사잇길을 걸어가던 중에 떠돌이 개가 정면에서 뛰어왔다. 순간 당황해 할 때, 옆 밭에서 일하시던 할망이 돌을 던지며 물리쳐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저쪽 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했더니 할망은 바로 앞 골목 안쪽에 사신다고 했다. 
해 질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나가보니 아침에 뵈었던 앞집 할망이다. 두 손에 들고 계신 콜라비를 내밀더니 '한번 먹어보간~'하셨다. 어떻게 먹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아직 남아있는 시골인심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하루.

11/06/2014

맛있는 제주 이야기 5 – 방어회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방어회가 맛있어지는 시기다. 사실 붉은빛의 생선살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11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때 잡히는 방어는 다른 어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다. 기름기가 살짝 많지만, 광어와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위별로 다른 색이고 맛 또한 다르다. 참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냉동이 아닌 활어로 그와 비슷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다만 7kg 이상의 대방어와 중방어의 맛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게 문제다. 7kg 이상의 대방어를 먹으려면 일단 인원이 많아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렵다. 어렵긴 하지만 가끔 대방어를 잡아 부위별로 나누어 한 접시씩 파는 횟집들도 있으니 그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방어회가 느끼하다 느껴진다면 무순이나 생 와사비와 함께 먹어보시라.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1/05/2014

제주 이주 준비 – 이사짐

결정은 났다. 이제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도시에서만 살던 녀석이 시골구석으로 내려가려니 신경 쓸 게 많다. 무엇부터 챙기고 준비해야 하는지 좀 막막하다. 이사도 해야 하고 아이 전학도 시켜야 하고 현재 하는 일도 적당히 갈무리하고 내려가야 하는데 어디 먼저 손을 대야 할지 걱정이다. 아무튼 한 달 정도 남은 기간 철저히 준비하기로 한다. 어차피 계획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계획이 없다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사업체는 몇 군데 견적을 받았다. 신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평균 가격은 250만 원 전후다. (5톤 기준) 이것도 제주 열풍으로 가격이 높아져 있다. 조금 저렴하게 이사를 하려고 화물운송을 알아봤는데 차량 가격만 140만 원이고 인부와 포장은 직접 해야 한다. 사다리차, 인부, 포장재료 등을 어림잡아 따져보니 포장이사와 20~30만 원 차이다. 약간 고민은 되지만 다른 신경 쓸 일들도 많으니 속 편하게 포장이사로 결정이다.

10/31/2014

[음악] 잊혀진 계절 - 이용

오늘은 이 노래와 함께 겨울이 오는 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면 어떨까?
Halloween Day 같은 이국 상품을 무분별하게 따라하지 말고 말야.
너무 올드한 티 내는건가? ^^

10/27/2014

풍경 스케치 도전


무척 그리고 싶었다. 주변 소품이 아닌 다른 것을 말이다. 그러다 오래전 겨울, 토론토를 돌아다니던 기억이 떠올랐고, 낮은 구름이 낀 잔잔한 호수위에 철새 몇 마리가 한가롭게 유영 하던 온타리오 호수가 생각났다. 사진첩을 뒤져보니 을씨년스럽지만, 기억 속 그대로다.
똑같이 그려 보려했지만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다. 드로잉용 채색 도구가 아직 없으니 채색은 아들의 색연필을 이용. ^^

10/24/2014

[음악] 김동률 신곡 - 그게 나야(Who I Am)

늘 비슷한 느낌이지만 듣다 보면 또 듣고 싶은 묘한 목소리다.
신곡이다. 그런데 왜 영문 제목과 한글 제목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나만 그런가..

김동률 신곡 - 그게 나야(Who I Am)

10/22/2014

그리다. 또 그리다


맘 먹은 데로 선이 나오진 않았지만 비슷하게 그려진 것 같아 내심 만족 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리고 싶은 게 많이 보인다. 눈에 비치는 형태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내 드로잉북에 담기는 게 조금 어색하지만, 나만의 표현이라 믿고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완성해 본다.

10/17/2014

그림 그리기


여행작가학교가 끝나고 informal study 하나를 하고 있다. 바로 'My urban sketching'이란 그룹이다. 2주에 한번 모임이 있다. 아직은 대부분 서툰 손놀림이지만 그래도 서로 격려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다. 물론 나도 멤버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 못 한 불량 수강생이다. 그래도 과제물은 틈틈이 하고 있으니 탈퇴는 안 시키겠지~~ ^_^
이번 주 과제물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 그리기인데 난 얼마 전 선물 받은 오르골을 그렸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게 어린아이 마냥 신난다. 조금 더 연습해서 제주의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 가능할까?

제주 이주 준비 - 나를 허락한 제주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는 300개가 넘는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하보다 육지 사람들이 내려가 만든 게하가 더 많다. 불과 3~4년만에 이렇게 늘어났다. 그만큼 제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현실을 외면하도록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프레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잠시지만 여러번, 제주에 머물며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을 여럿 만났다. 가족과 모두 함께 내려와서 천천히 사는 분들도 있었고, 가족은 육지에 있지만 홀로 내려와 지내는 분도 있었다. 혹은 아직 젊은 친구들은 그곳을 자신의 땅으로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았다. 나 역시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생각만큼 쉽게 움직여지지 않아 늘 힘들었다. 어쩌면 그 긴 시간동안 제주가 나를 허락하지 않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흙을 밟으며 자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지내다보니 정작 아이가 놀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도 고민 내일도 고민뿐이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머물곳을 구한 지금, 이런 걱정은 없다. 다만 이제 그곳, 제주에서 어떤 살이를 해볼까하는 새로운 고민만 있다. 그저 행복한 고민일지는 스스로 자문하면서 말이다.

10/10/2014

제주 이주 준비 - 집 구하기



시작은 단순했다. 편안하게 지내던 회사생활이 갑자기 무료해졌다. 다른 직장을 구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냥 멀리 떠나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냥이었다.
2003. 처음 알아보던 지역은 인간의 생체리듬에 가장 적합한 해발 700m 정도에 자리잡은 곳. 강원도 평창, 둔내 지역이었다. 대략적인 사전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돌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적당한 땅을 찾았고 계약을 하려던 마지막 단계에서 일이 틀어져버렸다. 아무리 가고 싶은 일이라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찬성하던 사람이 마지막 단계에서 결사 반대를 하길래 마음속에서 덮어버렸고 다시 회사를 다녔다. 지금은 그 지역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2008. 일년에 한두 번 다녀오던 곳이었다. 제주였다. 다녀오면 그리워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이젠 내 일을 하고 있으니 움직이기도 편하고 또한 반대할 사람도 없다. 혼자 결정하면 된다. 수 차례 내려가 몇 날 몇 일씩 지내기를 수십 번. 마침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뼈 속까지 느껴졌다. 그때부터 준비를 했다. 적당한 지역을 찾아 돌아다니며 시세를 알아봤다. 나름 계산을 해보고 결정하고 계약을 하려 하면 가격이 달라져있었다. 기분이 나빠 흥정도 안하고 다른 집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계약을 하려 하면 집 값을 올려버렸다. 더럽고 치사해서 알아보던 일을 멈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판단이 틀렸다.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젠 소위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다.
2014. 여전히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미 오를 데로 올라서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 다시 돌아다녔다. 무작정 리사무소, 초등학교를 돌아다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마침내 찾았다. 몇 년 전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나름 마음에 드는 집이다.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10/07/2014

제주답지 않은 제주 이야기 1 – 최xx 빵다방

요즘 제주의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한 집이 아닐까 싶다. 예전부터 제주도라 하면 일반적으로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제주 음식=비싸다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아직 저렴하고 푸짐하다
그런데 요즘 시쳇말로 육지 것들이 들어와서 제주를 마구잡이로 망가뜨리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육지 것이 보기에도 너무 비싸게 팔고있다. 서울 특급호텔의 빵 가격보다 더 비싼 느낌이랄까2008년부터 시작된 제주 열풍이 제주의 집값은 물론이고 물가를 한껏 띄워놓았다. 물론 방송 탓도 있지만 그 중 한 몫하고 있는 게 육지 것들의 탐욕이 아닐까? 요즘 들어 달라지는 제주의 속살을 보고 있자니 쓴 소리 한마디를 하고 싶다. 이건 아니잖아!!!

9/30/2014

사자성어 유일무이(唯一無二) -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국내 유일무이한 트레킹 전문가가 있다. 바로 진우석 작가다. 국내 최초로 파키스탄 트레킹 책을 냈던 그분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우리나라 산야의 아름다움을 직접 발로 답사하고 담은 책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갑다. 진우석 작가님과 함께 첫 트레킹을 했던 날이 생각난다. ‘등산과 트레킹의 차이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등산은 등산화, 트레킹은 트레킹화를 신는 거지요~’라는 대답에 큰소리로 웃으며 맞장구를 치시던 분이다.
어쨌든 출판이 되었고 여행작가 학교 11기와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했다. 그런데 난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 했다. 직접 보고 따끈따끈한 저자 사인을 받았어야 하는데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나에겐 저자 사인이 담긴 예전 경품으로 위안을 삼는다.

아무튼, 출간하시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이 하신 진우석 작가님. 축하합니다~~

9/26/2014

맛있는 제주 이야기 4 – 겡이죽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 육지의 여느 바닷가에서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지만 아직까지 육지의 어떤 음식점에서도 보지 못했다. 바로 겡이죽이다.
겡이란 제주 방언으로 를 말한다. 갯바위 틈새에서 살고 있는 작은 겡이를 삶아 곱게 갈아 채에 걸러서 죽을 쑤는 것이다. 색깔은 전복죽보다 조금 더 갈색으로 은근히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흔히들 제주에 가면 전복죽을 많이들 찾는데 전복죽은 집 근처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굳이 제주까지 가서 찾는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긴 꼬챙이 하나와 장갑을 준비하여 갯바위 틈에서 갱이를 잡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혹시 아이들이 있다면 더 없는 자연놀이다. 먹기 위해 잡는 게 아니라면 잡은 후에는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려주는 일도 잊지 말자. 하찮은 미물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아닌가!

9/25/2014

맛있는 제주 이야기 3 – 무늬오징어 회

 오징어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말려 먹거나 회로 즐기는 오징어가 있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하얀 육질을 가진 녀석이 한치다. 또 다리가 짧고 등판에 납작한 뼈 조직을 가진 갑오징어도 있다. 회로 먹을 때 오징어나 한치보다 맛있는 게 갑오징어다. 그런데 이건 무늬오징어를 먹어보기 전에 하는 말이다. 일단 무늬오징어는 육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쫄깃하여 식감이 좋다. 물회를 만들어 먹을 때도 연한 맛을 원한다면 한치가 좋지만 약간의 씹는 맛을 선호한다면 무늬오징어 물회가 제격이다.

무늬오징어는 난류성 어종이라 제주도에서만 잡혔지만 이제는 남해나 서해에서도 잡히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일인이라 먼 제주도가 아닌 서울과 가까운 바다에서 잡을 수 있다고 하니 입가에 살짝 미소가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만큼 지구의 수온이 올라갔다는 증거라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해가 짧아지는 이때부터 제주도 연안에 무늬오징어가 잡힌다. 저녁 시간 방파제에서 야광 에기를 달고 싱싱한 무늬오징어 한 마리 낚아보는 건 어떨까? 미터급 크기를 잡는다면 더 없이 행복한 저녁시간이 될 것이다.

9/24/2014

맛있는 제주 이야기 2 – 문어 숙회



제주하면 생각나는 먹거리가 무얼까? 전복, 옥돔, 말고기, 오분자기 등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어다. 예전에는 전복이 유명했지만, 완도의 전복 양식에 밀려 제주의 전복은 그저 해녀 할망들이 채취하는 자연산이라는 의미로 퇴색된 듯하다. 오분자기는 개체 수가 많이 줄어 지금은 전복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 옥돔도 수입이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문어는 서해를 제외한 전역에서 아직 많이 잡힌다. 동해 문어는 참문어로 다년생이고, 제주 돌문어는 낙지와 마찬가지로 한해살이를 한다. 그래서 봄과 초여름 돌문어는 크기가 작다.두 종류 모두 맛있기는 하지만 돌문어가 조금 더 씹히는 맛이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때가 본격적인 문어 철이다. 크기도 적당하게 크다. 요즘 활문어가 kg 2만원 정도 하지만 포구에서 조금 더 저렴하게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 지역 오일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니 가을이 더 영글기 전에 문어 숙회 한 접시는 어떨까?

[음악] 찬비 - 우리

태풍 '풍윙'의 영향이라지만 가을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리면 기온이 올라 따뜻해지지만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하는 반갑지 않은 비다. 오늘 내리는 비가 바로 이런 비다.
추워진다는게 마냥 즐거운건 아니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음에 다시 한번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고마운 비고 감사한 하루다.

'찬비'

9/23/2014

맛있는 제주 이야기 1 – 뿔소라 회

 금어기가 끝나고 여름이 지나갈 무렵부터 뿔소라가 나오기 시작한다. 대부분 바다 생물들이 그렇듯 가장 맛있을 때가 찬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다. 추석이 지나고 마침 제주에 일을 보러 내려갔더니 뿔소라가 눈에 띈다. 마트에서 kg8천원이다. 껍질 손질하기가 고생스럽지만, 회 맛을 아는 사람은 그 수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뿔소라는 전복이나 참소라와 다른 색과 맛이다. 약간 발그스름한 색은 여간 미각을 돋우는 게 아니다. 또한, 오도독하게 씹히는 질감이 가위 일품이라 할만하다.

아직은 찬바람이 덜 불어서인지 서쪽 한림 아래쪽에서 보인다. 작은 포구에 들어오는 배에서 내리는 뿔소라가 300kg 정도니 조만간 제주 전역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9/02/2014

[음악] 세상이 모두 - 우리 (vocal 전인화)

거의 30년이나 된 노래다.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 시대에 이런 노래들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있다가도 없어지는 수 많은 일들. 
머물다가 떠나가는 수 많은 기억들. 
아름다운 사랑의 실로 역을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할까요?"


8/29/2014

전주 한옥마을 3부

<안도현 시인이 극찬한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화암사>
돌아오는 길,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다면, 아니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1시간 거리 불명산에 위치한 잘 늙은 절화암사에 가보길 권한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좁은 산기슭에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 모습이 그 어떤 수식어로도 형용하기 어렵다. 특히 바람이 찰 때 울리는 풍경소리가 산사를 가득 메우는 것만으로도 속세의 고단함을 풀어준다. 전주가 소리의 고장이 된 이유를 찾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아름다움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도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잘 늙은 절, 화암사 중에서/안도현 시인>


<<< 여행정보 tip

손맛 좋기로 유명한 전라도라 대부분 식당이 기본적으로 깊고 진한 맛을 가지고 있지만, 아침 해장을 생각한다면 콩나물국밥(삼백집(063-284-2227), 왱이집(063-287-6980))이 제격이다. 전주에 왔으니 전주비빔밥(성미당(063-287-8800), 한국관(063-272-9229))은 필수코스다.전주에서 특별한 밤을 원한다면 삼천동 막걸리 골목이나, 숙소 근처 슈퍼에서 연탄불에 구운 부드러운 황태구이에 가맥을 경험해 보는 것도 색다를 것이다
문화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체험 시설도 많다. 아이들이 있다면 전주제지에서 운영하는 한지박물관(063-210-8103)에서 한지 만들기 체험이나 한옥마을 작은 공방에서 도자기 체험을 하는 것도 좋겠다. 술을 좋아한다면 전통술박물관(063-287-6305)에서 가양주에 관련된 해설을 들으며 낮술 한잔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8/28/2014

전주 한옥마을 2부

<골목골목 주전부리, 막걸리 예찬>
어느 고장을 가더라도 대표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주는 조금 다르다.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도 아주 많다. 그 중 몇 가지만 꼽아보라면 주저 없이 전주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을 꼽는다. 막걸리도 빠질 수 없다.

먼저 전주비빔밥을 보면 그릇부터 눈에 들어온다. 놋그릇이다. 온도가 65도인데, 이 온도는 밥의 최적온도이고, 재료의 향이나 신선도가 가장 잘 유지되는 온도이다. 따라서 비빔밥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온도다. ‘전주비빔밥이 만나 전주비빔밥이라는 보통명사화가 되었고, 이런 섬세함으로 전주비빔밥은 이제 명실공이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다. 모양새는 어떠한가. 동서융합이 된 조화로운 모습이다. 후백제 이후 천년고도를 이루었고, 지금은 잊혀진 기억일지라도 그 영광의 역사를 애써 되찾으려 하지 않는 전주 사람들이다. 또한 동학혁명의 중심지였지만 결코 과격하지 않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반드시 나서야 하는 일에만 나섰던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그게 전주고 그 사상 속에서 전주비빔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전주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벽당
콩나물국밥은 또 어떠한가. 전주콩나물국밥이 맛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콩나물에 있다. 보통 콩나물은 대두를 사용하여 크기만 크고 밍밍한 맛이지만, 전주콩나물국밥에 들어가는 콩나물은 쥐눈이콩을 사용하여 작고 가늘지만, 고향 툇마루에서 키운 듯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진다. 콩나물 국밥과 함께 수란이 나오는 것도 전주만의 특징이다. 전날 숙취가 남아있다면 모주를 한 잔하는 것도 좋다. 막걸리에 8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인 모주는 알코올이 거의 없어 술이라기보다 숙취 해소용 건강음료에 가깝다.
온종일 전주의 맛과 멋에 흠뻑 빠졌다면 해거름이 내려앉는 시간, 막걸리집으로 향해보자. 전주 막걸리집은 통영 다찌집, 마산 통술집과 더불어 서민들의 사랑과 애환이 담긴 대폿집이다. 한 주전자를 시킬 때마다 입맛을 돋우는 안주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을 기대했던 사람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이른 실망은 금물이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맛깔 난 음식들이 눈보다는 혀를 즐겁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터. 누군가는 행복해서, 누군가는 슬퍼서, 또 누군가는 이 사회가 술을 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칼한 목을 시원하게 적시며 내려가는 한잔 막걸리에 어떤 의미를 두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슬쩍 대답해본다. '잊기 위해서'라고…….
전주 막걸리를 마시면 네 번 취한다. 한번은 흥에, 두 번은 안주에, 세 번은 맛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에 취한다. 그래서 술은 풍류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전주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공간이다.

8/27/2014

전주 한옥마을 1부


벚꽃이 봄눈처럼 쏟아졌다. 이 봄을 채 느끼기도 전에 말이다. 봄과 어울리는 도시가 있다면 아마도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문화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다양하고 푸짐한 전라도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전주라면 맞춤한 듯 봄과 잘 어울리겠다. 문명의 이기에 취해 자기만의 색을 잃고 알록달록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다른 도시와 다르게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며, 느리지만 결코 뒤처지지 않는 도시, 전주를 만나러 간다.


<오래된 미래를 품은 고목들의 속삭임, 한옥마을>
은행나무는 전주의 상징 나무다. 수명이 길고 곧게 자라며, 벌레를 많이 타지 않는 은행나무가 전주를 대표하는 건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일찍이 한지와 유학의 발달로 문화와 교육이 뿌리 깊은 역사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주향교 마당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무려 네 그루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귀한 나무가 하나 더 있다. 한옥마을 은행로에 6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다. 그 고즈넉함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깊이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게 만든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고목 가까이서 살펴보면 바로 곁에 10년 남짓 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가까이 심지 않는다. 두 나무 모두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600년이나 된 보호수 곁에 눈치 없이 자라고 있는 나무. 어지간히 눈에 거슬린다.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 나무도 사연이 있다. 보호수의 맹아묘. , 씨앗에서 자란 게 아니라 어미나무의 뿌리에서 자라난 고목의 분신인 것이다. 어미의 살갗을 트고, 굳은 땅을 힘차게 뚫고 나온 맹아묘라 하니 어미나무만큼이나 당당하게 보인다. 어쩌면 몇십 년 후 혹은 몇백 년 후 어미나무가 쓰러지는 날이 올 때 곁에서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자라난 듯하여 더욱 대견해 보인다. 맹아묘는 어미의 위용을 그대로 후세에 전할 것이다. 가만히 다가가 살짝 손을 얹어본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나무보다 못한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두 나무 모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한옥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지막한 동산, 오목대로 발길을 돌린다. 오목대 정상은 한옥마을의 가지런한 기왓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주의 종친들과 승전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고, 이곳에서 유방의 대풍가를 부르며 새 나라를 열고자 하는 꿈을 알렸다고 한다. 오목대를 오르는 중턱에는 500년 세월 한옥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당산나무가 있다.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나무다. 문득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당시 고뇌하던 태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찌할꼬. 이 피비린내를… … 과연 나라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역적이냐?’ 이렇게 태조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힌 경우가 유독 많았음을 생각하니 그리 유쾌한 상상만은 아닌듯하다. 최근에는 이 당산나무 아래서 사랑을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하여 수많은 소원지가 빼곡하게 끼워져 있다. 비록 소원지를 적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앞으로의 역사는 평화롭기를 기원해 본다.
사방이 트인 오목대에서 무뎌진 방향감각을 되찾아 이번에는 경기전을 향해보자.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태반이라 할 수 있다. 태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가 있다. 만약 전주사고마저 짓밟혔다면 지금의 조선왕조실록은 아마도 구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경기전 내에서는 지조와 인내, 절개를 의미하는 대나무와 기품과 품격을 상징하는 매화나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나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등 굽은 매화나무다. 혹자는 누워서 잠을 자는 것 같다지만, 위아래로 휘어진 모습이 용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용매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하지만 실상은 기나긴 세월 모진 풍파에 치이고 짓밟혀 허리는 굽었고, 가녀린 줄기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도 꿋꿋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경기전의 역사와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하다. 가지 끝을 살짝 잡으면 전해오는 떨림이 왠지 안쓰럽고 미안할 뿐이다
경기전 건너에는 호남 최초로 건립된 100년 역사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이 자리한다. 주말이면 예식이 많아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살짝 성당에 들어가 짧은 기도를 드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한, 천 년의 시간 속에서 천주교도의 순교를 지켜보고, 동학 혁명군의 입성을 묵묵히 내려다본 풍남문도 그 세월의 흔적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처럼 한옥마을은 볼거리, 들을거리가 많은 곳이다.


* 여행작가 학교 2차 과제 편집본

8/26/2014

[음악] 만약에 말야 -노을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 '만약에'란 말이다. 그런 가정하는 일 없이 후회없이 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다보면 나에게도 그 '만약에'가 허락된다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겠지.
쓸대없는 고민이지만, 긴 밤이다.


8/22/2014

행복한 날

특정한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날이 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행복하기도 하듯이.

바로 오늘처럼!

8/20/2014

자업자득 (自業自得) (부제 : 검은 유골의 목소리 - 나는 해방되었는가)

검은 유골? 유골은 대부분 흰색이거나 회색일 텐데 검은 유골이라니? 지난 주말 저녁 우연히 보게 된 추적60분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별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일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들 중 대다수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힘이 없어 지켜주지 못한 국민들이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이다. 안타까운 과거사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보니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말로만 이들을 위한 추모제니 위령제를 지낸다. 형식적이다. 이런 형식적인 겉치레 말고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발굴을 통해 이미 주검이 되어 유골만 남은 분들을 모셔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은 개인적으로 추진하기 어렵기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역만리 타향으로 끌려간 힘없는 국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에 분통함에 아직도 눈 감지 못한 숱한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말이다. 그리고 난 당연히 우리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방송을 보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일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지나간 과거사라 여기고 방치하고 있다. 물론 한때 시도는 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에 고이즈미 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에서 정식 의제로 채택하고 강제징용자의 유골을 본국으로 봉환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조직을 만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정부주도하에 활발한 발굴이 이루어져 2,70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한일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정권은 이 조직을 해체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본으로서는 당연히 이후의 발굴에 적극적일 필요 없는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이것은 직무유기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임에도 전혀 손쓰지 않고 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국가의 직무유기이다하루빨리 관련 조직을 다시 만들고 적극적으로 유골 봉환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자신에 대한 자책은 물론이요, 국민의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한 나라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라도 사라지지 않을까? 아직도 서럽게 외치고 있는 억울한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골에 대한 예의일 뿐 아니라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그들의 고통과 억울함과 그리움이 하루빨리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




PS. 하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세월호 사고와 같은 일련의 사건사고에 대한 국가의 태도로 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른 현안들로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하고 있지 않는가? 정작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지도자를 가진 대한민국.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의 무관심이 이 시대의 무서운 괴물들을 만들고 키우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업자득이다.

8/19/2014

Jamaica Blue Mountain Coffee

사무실 커피가 떨어졌다. 주문해야지 하면서 계속 까먹었다. 며칠을 인스턴트 커피로 버티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커피를 선물 받았다. 스틱 형태인지라 인스턴트 커피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향기가 아주 좋았다. 인스턴트 커피 봉지가 뜨거운 물에 닿으면 환경 호르몬이 나와 안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건 미국 FDA 기준에 맞게 만들어졌다고 하니 믿어볼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 찝찝하길래 봉지를 뜯어 머그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진하게 우러나는 커피 향이 아주 좋다.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런데 막상 마시려고 보니, 인스턴트가 아닌 분쇄한 원두커피가 아닌가? 적당한 필터가 없어 그냥 한 모금 마시려니 커피 알갱이가 입안에서 굴러다닌다. ㅠ
남은 몇 봉지의 맛있는 Jamaica Blue Mountain Coffee는 있는 그대로, 사용법 그대로 마시기로 하고 주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8/13/2014

서울, 조각을 맞추다 (부제 :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

백사실계곡 올라기는 길
백사실계곡 별서터
첫 경험이었다. 누구에게는 설렜던 기억으로, 혹 누군가에게는 두려웠던 기억의 한 조각으로 아련하지만 깊이 묻어두었던, 가슴 뛰지만 숨겨두고 섣불리 꺼내보지 못하던 기억. 오늘 난 단조롭기만 한 세월의 흐름에 무뎌지고 굳어버린 조각들은 버리고 새로운 시간의 퍼즐을 맞췄다. 이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바로 서울에서 말이다.
40여 년 살아온 익숙한 서울이었기에 무엇 특별한 게 있을까? 전날 밤부터 고민했다. 이미 수십 번 파헤쳐지고 도려내어져 치부까지 드러낸 곳인데, 그 신음소리를 들으러 가야 하나? 그 마른 땅, 콘크리트 무덤에 내 슬픔 한 조각 내밀어 위로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또 단체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이 마지막인데, 조직 생활에 서툰 반사회적 인간인 내가 단체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어떤 핑계도 찾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부딪쳐 보자.


세검정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어릴 적 뛰놀던 동네의 모습과 흡사한 신영동 골목을 따라 이어지다 백사실계곡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계곡 주변에 주춧돌만 남아있는 별서터가 백사 이항복의 땅인지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곳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예고하는 복원사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리가 가슴을 무겁게 만들 뿐이다.
혹자는 빈터만 남아있어 흉물스럽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고즈넉하고 평안하기만 하다. 조금 깨지고 삐뚤어져 있어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길 바란다. 물론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지만, 보존과 개발의 줄다리기에서 너무나도 쉽게 부등식을 만들어버리는 정책들을 족히 백 년은 연못 터 곁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길을 재촉하며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가능하면 평창동 쪽은 보지 않으려 애썼다. 수많은 콘크리트 무덤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악팔각정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평창동은 내가 알고 있던 그런 메마른 땅이 아니었다. 그곳은 봄빛 가득 머금고, 푸른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내 마음속 빗장은 조금씩 풀렸다. ‘서울은 이미 차갑게 죽었다는 마음속 조각은 하나둘 희미해지고, ‘서울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의 조각 하나가 생겼다. 그래 이제라도 살아있는 서울을 만나고자 한다. 어딘가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아직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서울을 찾아보자. 그때마다 만날 새로운 조각들은 아마도 내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추억 속의 고향, 그런 서울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여행작가 학교 1차 과제물 편집본

8/10/2014

무지개야 나와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춥다. 선선하다 못해 춥다. 요 며칠 사이의 날씨 얘기다. 지난주까지는 더워도 너무 더워 숨만 크게 쉬어도 땀이 줄줄 흘렀는데, 입춘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태풍 할룽의 영향인지 기온이 크게 내렸다. 정말 한순간이란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말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못해 춥다는 소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사람의 간사함이란...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저녁 무렵 얼추 그치는 듯싶더니 하늘색이 이상해졌다. 뭘까~ 하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려있다. 근래 보았던 무지개 중 가장 크고 선명하다. 예쁘다.
그런데 난 왜 무지개만 보면 소원을 빌고 싶어 지는 걸까?

8/07/2014

[공지] 여행작가학교 12기 모집

가을이 오려나 보다. 어제보다 느껴진 더위가 한결 물러진 걸 보니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본다. 굳이 심리학적인 면을 적용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나 역시 관심분야가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여행이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여행이란 굳이 멀리까지 가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여행이라고 하지만 그건 내 기준으로는 관광이나 휴양이다. 여행이란 언제 곤 그냥 훌쩍 떠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를 찾으러 혹은 무언가 찾으려는 목적이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에게 여행이란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버리는 여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관련글 긴 여행 )

아무튼 난 지금도 여행을 생각하고 있고 좋아한다. 그리곤 가끔 훌쩍 떠난다. 그런 나만의 여행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내 방식의 여행과는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라는 호기심에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여행작가 학교'. 글 쓰는 재주가 없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기에 반드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또한,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이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감성을 자극하지만 실상은 직업적으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매력적이란 게 느끼는 방법이 다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아무튼 나이 성별 직업을 떠나서 관심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원한다면 수강해보시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사람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수강신청 팁!
1. 경쟁이 치열하다. 10시에 수강신청서가 올라오고 메일로 접수까지 5분 이내로 해야 한다. 따라서 이메일 창을 미리 열어두고 신청서 작성이 끝나자마자 attach하고 send를 바로 누를 것!
2. 빈칸이 있으면 안 되므로 없음이라고 써도 된다. ‘없음은 해당사항이 없을 뿐이지 빈칸이 아니다.
3. 혹시나 해서 이전 양식을 올린다. 양식이 매 기수 바뀌지만, 내용은 그리 차이 나지 않으므로 내용을 미리 작성해두고 COPY&PASTE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è 여행작가학교 수강생 모집

8/06/2014

올챙이 추억 전시관

둔내에서 6번 도로를 따라 횡성 방향으로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산길을 달린다. 창문을 열고 강원도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외치던 오래 전 광고카피가 떠오른다. 광고 삽입곡인 ‘Simon & Garfunkel The Boxer’를 틀어놓으면 드라이브가 더욱 운치 있겠지만, 불행히 앨범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찾아 들으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더 불행(?)하게도 난 아직 폴더 피처폰이고 2G 유저다.
한적한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내려 오다 보면 180도의 급커브 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는 누구나 속도를 충분히 줄여야 한다. 속도계가 30 이하로 떨어질 때쯤, 정면에 나무로 만든 작은 입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올챙이 추억 전시관'
무얼까? 알에서부터 개구리가 되는 단계를 구분해 놓은 부화조가 있는 걸까? 아니 이건 계절의 영향이 있으니 어렵겠지. 그럼 실내 부화조? 아니면 그냥 개구리 종류를 박제해 둔 전시관? 간판에 적힌 이름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어차피 속도는 줄였겠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 일단 한번 들어가 보기로 한다. 좁은 소로를 따라 500m 정도 달려가니 널찍한 터에 건물들이 몇 개 보인다. 입구에 주차를 해두고 들어서지만 내가 예상했던 곳이 아니다. 일단 유료다. 안내문을 보니 건물을 전시실로 활용하면서 7080세대가 사용하던 오래된 일상용품을 전시해 두고 있다. 입장료가 비싼 건 아니지만 굳이 7080세대인 내가 입장료까지 내고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어보고 싶지는 않다. 일제의 잔재, 군부독재의 잔재라는 생각만으로도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몇 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에게 그리 감동을 주진 않는다. 어쨌든 그냥 가볍게 산보하듯 주변 경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입구 한편에 꽤 너른 연못이 있다. 연꽃이 피는 7월이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장관일 것 같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까지 나무다리가 있어 건너갈 수 있게 해 둔 것은 운치 있어 좋다. 출렁이는 나무다리를 건너다 연못 바닥을 살펴보니 아이 주먹만 한 우렁쉥이가 보인다. 흔히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라 신기하기만 하다. 몰래 한 마리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복고풍이 유행이라 이런 전시관들이 주변에 많기는 하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여름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면 한 번쯤 들려봐도 좋을 듯하다. 특히 아이들이 있다면 말이다.


주소 : 강원 횡성군 둔내면 궁종리 75-1

7/31/2014

대한민국호(號)

7월의 마지막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호(號)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89년 읽었던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7/29/2014

포천 송어낚시 (동교지)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 하나가 있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처음 갔던 일이다. 장소는 정확히 모르지만, 충청도 어느 저수지였다.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좌대라 불리는 수상가옥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기억. 아직 어리다며 낚싯대를 주시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아버지 낚싯대로 붕어를 2마리를 잡았던 기억. 고기를 직접 잡은 것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그 행복은 아마 아버지와 함께였기에 더 행복했다. 이런 기억들이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이젠 나에게도 9살 아들이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바다낚시를 몇 번 함께 다녔다. 아들은 비록 작은 각재기였지만 직접 물고기를 잡아 본 적도 있다. 채비를 해주고 천천히 릴 링 하라고 이야기해주거나, 찌가 이렇게 움직이면 챔질하고 대를 직각으로 들어야 한다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대로 따라 했다. 폼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내 첫 출조 때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물 앞에 서 있는 아들이 불안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은 혼자 낚시를 하도록 낚싯대를 쥐여주진 않는다. 다만 내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그 행복한 기억을 내 아들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뿐이다.

지난겨울, 송어낚시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심심하던 차에 바람이나 쐴 겸 아들과 포천 송우리에 있는 동교지로 향했다. 동교지는 유료 낚시터지만 상류에서 잠깐 짬 낚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대를 펴고 몇 번 캐스팅하던 중 한 마리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아들은 자기도 하겠다며 떼를 쓴다. 어차피 손맛은 봤으니 아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은 채비 운용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기온이 많이 올라서인지 더 이상 입질이 없었다. 그래도 송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기에 다행이다. 이렇게 아들과의 추억 하나가 생긴 지난겨울 어떤 날.

7/25/2014

[요리] 닭도리탕

유난히 일찍 시작한 여름은 무더위를 대비할 여유도 안 주고 불현듯 곁에 와있다. 끈끈한 더위가 온몸에 착 감기는 게 여간 거추장스럽다. 나무 그늘에 가만히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하거늘,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럴 땐 몸보신이란 말이 절로 생각난다. 먹어야 힘이 나고 이겨낼 수 있다.
닭은 저지방 고단백으로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보신에 좋은 음식이다. 특히나 오장육부를 따뜻하게 하여 기운을 북돋아 면역력을 높여준다 하니 여름철 보양식으로는 제격이다. 서양에서도 치킨 수프를 환자들에게 권하지 않는가!
더위에 더 지치기 전에 닭 요리를 한다. 삼계탕이나 백숙도 좋지만 얼큰한 게 당기니 닭도리탕이다. 몸에 좋은 약초나 한약재를 넣어도 좋지만, 이 더위에 불 앞에 오래 서 있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간단하게 만들어 본다.


[재료]
생닭, 감자, 당근, 마늘, , 청양고추
양념장 :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 설탕, 후추, 소주, 다진마늘, 청양고추, 강황가루

[Tips]
1. 생닭은 손질해서 끓는 물에 먼저 삶아주면 기름이 제거되어 담백하다. 이때 소금과 소주를 넣어 잡내를 제거하고 살코기에 간이 배도록 한다.
2. 물을 조금 넉넉하게 잡아 졸여주는 게 좋다. 남은 양념 국물로는 볶음밥이 제격~
3. 얼큰한 도리탕을 원할 때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많이 넣으면 텁텁해지니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어 주는 게 깔끔하다.
4. 감자는 큼지막하게 넣어준다. 맛도 맛이지만 감자가 다 익었으면 닭도 다 익었다는 거다.
5. 없어도 상관없지만, 강황가루 한 스픈을 넣어주면 건강에 좋기도 하거니와 닭고기 색깔이 노르스름하게 보여 더욱 맛있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