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2014

대한민국호(號)

7월의 마지막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호(號)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89년 읽었던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7/29/2014

포천 송어낚시 (동교지)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 하나가 있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처음 갔던 일이다. 장소는 정확히 모르지만, 충청도 어느 저수지였다.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좌대라 불리는 수상가옥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기억. 아직 어리다며 낚싯대를 주시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아버지 낚싯대로 붕어를 2마리를 잡았던 기억. 고기를 직접 잡은 것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그 행복은 아마 아버지와 함께였기에 더 행복했다. 이런 기억들이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이젠 나에게도 9살 아들이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바다낚시를 몇 번 함께 다녔다. 아들은 비록 작은 각재기였지만 직접 물고기를 잡아 본 적도 있다. 채비를 해주고 천천히 릴 링 하라고 이야기해주거나, 찌가 이렇게 움직이면 챔질하고 대를 직각으로 들어야 한다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대로 따라 했다. 폼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내 첫 출조 때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물 앞에 서 있는 아들이 불안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은 혼자 낚시를 하도록 낚싯대를 쥐여주진 않는다. 다만 내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그 행복한 기억을 내 아들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뿐이다.

지난겨울, 송어낚시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심심하던 차에 바람이나 쐴 겸 아들과 포천 송우리에 있는 동교지로 향했다. 동교지는 유료 낚시터지만 상류에서 잠깐 짬 낚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대를 펴고 몇 번 캐스팅하던 중 한 마리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아들은 자기도 하겠다며 떼를 쓴다. 어차피 손맛은 봤으니 아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은 채비 운용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기온이 많이 올라서인지 더 이상 입질이 없었다. 그래도 송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기에 다행이다. 이렇게 아들과의 추억 하나가 생긴 지난겨울 어떤 날.

7/25/2014

[요리] 닭도리탕

유난히 일찍 시작한 여름은 무더위를 대비할 여유도 안 주고 불현듯 곁에 와있다. 끈끈한 더위가 온몸에 착 감기는 게 여간 거추장스럽다. 나무 그늘에 가만히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하거늘,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럴 땐 몸보신이란 말이 절로 생각난다. 먹어야 힘이 나고 이겨낼 수 있다.
닭은 저지방 고단백으로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보신에 좋은 음식이다. 특히나 오장육부를 따뜻하게 하여 기운을 북돋아 면역력을 높여준다 하니 여름철 보양식으로는 제격이다. 서양에서도 치킨 수프를 환자들에게 권하지 않는가!
더위에 더 지치기 전에 닭 요리를 한다. 삼계탕이나 백숙도 좋지만 얼큰한 게 당기니 닭도리탕이다. 몸에 좋은 약초나 한약재를 넣어도 좋지만, 이 더위에 불 앞에 오래 서 있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간단하게 만들어 본다.


[재료]
생닭, 감자, 당근, 마늘, , 청양고추
양념장 :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 설탕, 후추, 소주, 다진마늘, 청양고추, 강황가루

[Tips]
1. 생닭은 손질해서 끓는 물에 먼저 삶아주면 기름이 제거되어 담백하다. 이때 소금과 소주를 넣어 잡내를 제거하고 살코기에 간이 배도록 한다.
2. 물을 조금 넉넉하게 잡아 졸여주는 게 좋다. 남은 양념 국물로는 볶음밥이 제격~
3. 얼큰한 도리탕을 원할 때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많이 넣으면 텁텁해지니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어 주는 게 깔끔하다.
4. 감자는 큼지막하게 넣어준다. 맛도 맛이지만 감자가 다 익었으면 닭도 다 익었다는 거다.
5. 없어도 상관없지만, 강황가루 한 스픈을 넣어주면 건강에 좋기도 하거니와 닭고기 색깔이 노르스름하게 보여 더욱 맛있게 보인다.

7/24/2014

그리고, 100일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참 많이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미안했다. 무기력한 내 모습이 싫었다. 정말 더럽게 서러웠다. 그래서 눈물만 흘렸다. 그들을 떠올릴 때면 그냥 눈물이 흘렀다. 길을 걷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캠페인 하는 곳이면 다가가 서명을 했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반드시 특별법이 제정되면 좋겠다고 두 손을 잡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시간이 흘렀다. 벌써 100일이 지났다.
한쪽에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질질 끌고 있는 게 뭐 하는 짓이냐며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한다.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이기적인 세상을 이용하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누군가 그랬다. 정치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강하고 약함이라고제발 누구라도 강한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 자신의 이익에만 눈 멀지 않은 올바른 방향으로 말이다.

아직 그들이 잠들어있는 바다다. 여전히 진행 중인 슬픔을 간직한 바다지만, 미안하게도 참 아름답다. 그 바다에 예쁜 꽃 한 송이 띄워 보낸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슬픔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노라고… 

7/21/2014

[공지] 2014/3Q IRM Setting

목표가 없다는 게 최근의 내 문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
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는 게 문제.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묻혀 살고 있다는 게 문제.
이런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하나도 손을 안 쓰고 있다는 것도 문제.
문제. 문제. 문제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2014년 3Q부터 다시 IRM(Individual Roadmap)을 작성했다.
시작이 반이다. 그동안의 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앞으로 해결하면 되는 숙제일 뿐. 시작.

7/18/2014

[영화] Burning Man

매년 8월이면 네바다주 Black Rock Desert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축제 이름이 Burning Man이다. 혹자는 이 축제를 현실 도피적인 오컬트 문화라고 말하지만, 6만 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자유를 만끽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축제일 뿐 다른 의의를 두고 싶진 않다.

무더위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름. 제목부터 뜨거운 한 편의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Burning Man'
무슨 장르일까? 어떤 내용일지 도저히 감이 안잡힌다. 분명 SF 아니면 액션 장르일 거라 추측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확실하게 미성년자 관람 불가임을 알려준다.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제목과 내용은 별개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소중했던 시간의 기억들이 과거와 현재에 오버랩되며 빠르게 조각을 맞추어 간다. 더위를 잊을 겸 생각없이 보고 싶었건만, 잠시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그 조각을 놓쳐버린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주인공의 삐딱함이 이해되었고, 조금 식상한 내용의 그저 그런 멜로 영화라 단정 지을 때 쯤. 주인공이 진한 눈물을 흘린다. 그 소리 없는 흐느낌을 보고 있자니 불쑥 내 감정이 동조 되었다. 영화보다는 감정을 멋지게 표현한 배우, 매트 구드를 알게 된 영화, Burning Man이다.

7/14/2014

풍수원 성당

우연찮게 마주친 길이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고속도로의 신속함보다는 국도의 느릿함을 느끼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항상 다니던 길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면 숨어있는 새로움을 구석구석에서 만나게 된다. 풍수원 성당이 그랬다. 횡성에서 출발하여 한적한 6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오던 길 위에서 그렇게 우연히 풍수원 성당을 만났다.

수많은 길 위에서 '문화재'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문화재는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였을까? 지나치던 길에 힐끗 보았던 표지판의 문구가 자꾸만 입속을 맴돌았다. 풍수원, 풍수원 성당? 그대로 지나쳐 버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쉬 잊어버렸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불법 유턴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름도 나름 신선했지만 이런 외진 숲 속에 있는 성당이라 사뭇 더 궁금했다.

성당 입구에 주차하고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아서자마자 널찍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곤 마당 가운데 자리 잡은, 한눈에 보아도 오랜 시간 곱게 때 묻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풍수원 성당이다.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천주교인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쌓아 만든 성당이다. 그래서였을까? 마당 한편 커다란 느티나무의 무성한 가지들이 성당을 보듬어 안듯 살짝 가리고 있다. 그 옛날 모진 핍박을 피하고자 숨어든 사람들을 은밀하게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성당 왼편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아담한 구 사제관이 눈에 띈다. 사제관을 향한 좁은 입구 양쪽에 늘어선 짙푸른 나무들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자니 죄 사함을 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야트막한 언덕을 조금 더 가보면 너른 잔디밭 위에 야외 미사를 보기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항상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미사를 드리기보다는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런 야외에서 소풍 나온 듯 미사를 드리는 것도 운치 가득할 것만 같다. 풍수원 성당에서 절대 지나쳐서는 안 될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유물전시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근현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크기의 토기와 각종 농기계뿐 아니라 어릴 적 보았던 물지게, 똥지게는 물론이고 불과 수년 전까지 사용했던 곰방대, 성냥갑 같은 수백 점의 생활 유물들이 한자리에 잘 전시되어 있다. 너무 오래되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역사를 만나는 것은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지만 불과 반세기 전 사용하던 물건들을 만나는 일은 반가움, 그 이상의 큰 감동이다.

맑은 하늘이 푸르름을 적셔가는 휴일 오후, 한적한 산길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살짝 찾아가보는 것도 내심 반가운 일 일게다. 성당을 내려오다 보이는 풍수원 휴게소/기사식당의 청국장도 성당만큼이나 깊고 진한 맛을 간직하고 있으니 참조.

주소 :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7/11/2014

공간을 비웠던 변명

설명이 필요없이 단순했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 이유가 말이다. 당연히 내 공간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오던 글이 없어져 버렸으니 걱정해 주시던 분들도 계셨을 테고, 이 기회에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2009년 시작한 사업을 2013년 10월에 접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은 것이라고는 큰 빚과 10kg이나 홀쭉해진 내 모습이었다. 세월이 흘렀다고 주변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변한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 자신뿐이었다. 사업을 정리하던 지난 몇 달 동안 코앞에 산재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바빴다. 아주 많이 바빴다. 빚쟁이들을 피해 숨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건 정상적인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와야 했다. 정신적으로건 육체적으로건 무엇인가에 쫓긴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조금은 숨 쉴 만큼의 시간이 생겼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시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실패한 사업은 나에게 '이젠 욕심 없이 천천히 살자'는 다짐 또 다짐하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과정 하나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수료한 '여행작가과정'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신청한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달 만에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도 약간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조차 피하게 되면 앞으로의 살이가 더 힘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부딪쳐 보기로 했다.
3달간의 과정 중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가끔 여행도 하면서 한주 한 주가 지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보던 시선과는 또 다른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하며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2014년 봄. 그렇게 난 세상을 향한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 '여행'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차던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동안의 내가 걷고 듣고 보던 방식들과는 다른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변화 말이다. 그 변화를 여기에 표현해 보려 한다. 여행지를 찾아가는 여행만이 아닌 또 다른 내 삶의 여행에 관해서 말이다.
여행작가학교 11기

7/10/2014

[공지] Again

불안했다.
너무 오랫동안 비워 둔 공간이었기에 행여 정지되진 않았을까? 스팸이나 광고들로 보기 민망한 화면이 가득하면 어쩌지? 도메인을 적어 나가는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떨린다. 방향을 잃고 헤맨다. 백스페이스를 몇 번 왕복한 끝에 완성된 도메인 주소.
cocoonasset.blogspot.com....

낯설다. 하지만 누구를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함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동안을 떠나 있었어도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갑다. 예전처럼 자주는 못할 듯하지만,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 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하나둘 기억 너머로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말이다.
2014.6월 국도 6번도로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