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2011

극단적 자기표현

세상 어디를 가던, 아무리 행복하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자기표현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본적인 삶의 틀을 만들어 준다면 그 빈도가 줄어들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러겠지.
사고로 죽는 사람들,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래. 그런 상황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왜 그들이 자살이란 마지막 방법을 택했는지 영원히 알수 없을게다. 아마도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직면해보지 않고서는 말이다.
▶▶ 마창대교 전경


'지난해 8월 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 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 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중략)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 경향신문 칼럼 中

전문은 여기로..  

댓글 2개:

  1. 안타깝고 가슴아픈 이야기들 이네요. 마지막의 준엄한 경고가 두렵습니다. 저도 주위사람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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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아픔을 넘어 약간의 분노(?)가 올라옵니다.
    oldman님 블로그를 보면 마음이 따뜻하신 분일거라 느껴지는데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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