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2014

풍수원 성당

우연찮게 마주친 길이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고속도로의 신속함보다는 국도의 느릿함을 느끼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항상 다니던 길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면 숨어있는 새로움을 구석구석에서 만나게 된다. 풍수원 성당이 그랬다. 횡성에서 출발하여 한적한 6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오던 길 위에서 그렇게 우연히 풍수원 성당을 만났다.

수많은 길 위에서 '문화재'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문화재는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였을까? 지나치던 길에 힐끗 보았던 표지판의 문구가 자꾸만 입속을 맴돌았다. 풍수원, 풍수원 성당? 그대로 지나쳐 버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쉬 잊어버렸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불법 유턴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름도 나름 신선했지만 이런 외진 숲 속에 있는 성당이라 사뭇 더 궁금했다.

성당 입구에 주차하고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아서자마자 널찍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곤 마당 가운데 자리 잡은, 한눈에 보아도 오랜 시간 곱게 때 묻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풍수원 성당이다.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천주교인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쌓아 만든 성당이다. 그래서였을까? 마당 한편 커다란 느티나무의 무성한 가지들이 성당을 보듬어 안듯 살짝 가리고 있다. 그 옛날 모진 핍박을 피하고자 숨어든 사람들을 은밀하게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성당 왼편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아담한 구 사제관이 눈에 띈다. 사제관을 향한 좁은 입구 양쪽에 늘어선 짙푸른 나무들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자니 죄 사함을 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야트막한 언덕을 조금 더 가보면 너른 잔디밭 위에 야외 미사를 보기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항상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미사를 드리기보다는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런 야외에서 소풍 나온 듯 미사를 드리는 것도 운치 가득할 것만 같다. 풍수원 성당에서 절대 지나쳐서는 안 될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유물전시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근현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크기의 토기와 각종 농기계뿐 아니라 어릴 적 보았던 물지게, 똥지게는 물론이고 불과 수년 전까지 사용했던 곰방대, 성냥갑 같은 수백 점의 생활 유물들이 한자리에 잘 전시되어 있다. 너무 오래되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역사를 만나는 것은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지만 불과 반세기 전 사용하던 물건들을 만나는 일은 반가움, 그 이상의 큰 감동이다.

맑은 하늘이 푸르름을 적셔가는 휴일 오후, 한적한 산길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살짝 찾아가보는 것도 내심 반가운 일 일게다. 성당을 내려오다 보이는 풍수원 휴게소/기사식당의 청국장도 성당만큼이나 깊고 진한 맛을 간직하고 있으니 참조.

주소 :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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