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2014

서울, 조각을 맞추다 (부제 :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

백사실계곡 올라기는 길
백사실계곡 별서터
첫 경험이었다. 누구에게는 설렜던 기억으로, 혹 누군가에게는 두려웠던 기억의 한 조각으로 아련하지만 깊이 묻어두었던, 가슴 뛰지만 숨겨두고 섣불리 꺼내보지 못하던 기억. 오늘 난 단조롭기만 한 세월의 흐름에 무뎌지고 굳어버린 조각들은 버리고 새로운 시간의 퍼즐을 맞췄다. 이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바로 서울에서 말이다.
40여 년 살아온 익숙한 서울이었기에 무엇 특별한 게 있을까? 전날 밤부터 고민했다. 이미 수십 번 파헤쳐지고 도려내어져 치부까지 드러낸 곳인데, 그 신음소리를 들으러 가야 하나? 그 마른 땅, 콘크리트 무덤에 내 슬픔 한 조각 내밀어 위로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또 단체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이 마지막인데, 조직 생활에 서툰 반사회적 인간인 내가 단체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어떤 핑계도 찾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부딪쳐 보자.


세검정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어릴 적 뛰놀던 동네의 모습과 흡사한 신영동 골목을 따라 이어지다 백사실계곡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계곡 주변에 주춧돌만 남아있는 별서터가 백사 이항복의 땅인지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곳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예고하는 복원사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리가 가슴을 무겁게 만들 뿐이다.
혹자는 빈터만 남아있어 흉물스럽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고즈넉하고 평안하기만 하다. 조금 깨지고 삐뚤어져 있어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길 바란다. 물론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지만, 보존과 개발의 줄다리기에서 너무나도 쉽게 부등식을 만들어버리는 정책들을 족히 백 년은 연못 터 곁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길을 재촉하며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가능하면 평창동 쪽은 보지 않으려 애썼다. 수많은 콘크리트 무덤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악팔각정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평창동은 내가 알고 있던 그런 메마른 땅이 아니었다. 그곳은 봄빛 가득 머금고, 푸른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내 마음속 빗장은 조금씩 풀렸다. ‘서울은 이미 차갑게 죽었다는 마음속 조각은 하나둘 희미해지고, ‘서울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의 조각 하나가 생겼다. 그래 이제라도 살아있는 서울을 만나고자 한다. 어딘가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아직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서울을 찾아보자. 그때마다 만날 새로운 조각들은 아마도 내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추억 속의 고향, 그런 서울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여행작가 학교 1차 과제물 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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