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2010

[음악] 개발공화국

얼마전 너무 지치고 힘이들어 모든걸 잠시 접고 가출을 했다.
목적지 없이 달려간 곳은 옛날 기억이 묻어있는 '인구'라는 작은 어촌이다.

젊은날 끓는 피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녀석과 새벽녘 달려가 방파제 위에서 밤새워 세상의 부조리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던 곳.
제대 후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나를 찾으러 달려갔던 곳.
살아오면서 기쁘고 슬프고 힘들때 가끔씩 들려보던 곳인데 오랜시간 가보지 못했던 곳.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다시 그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예전의 내 기억속에 예쁘고 작은 어촌이 아니였다.
진입로부터 해변을 따라 바리케이트가 쳐진 주차장이 되어 있었고,
돌로 쌓아 아기자기했던 아담한 방파제는 콘크리트로 반듯하게 덮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대형 테트라포트가 가득 메워진 거대한 방파제가 건설되어 있었다.

그 광경에 내 머리는 더 지끈거렸고 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곳에 잠시도 있고 싶지 않아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을 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지 가는 곳마다 굴삭기와 크레인들을 이용한 공사가 한창이다.
옛 모습이라고는 어디든 찾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 조차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에 그냥 바다가 보이는 작은 민박집 하나 얻어 방안에만 우두커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주변 풍경도 예외는 아니였다.
도로가 파헤쳐지고 차선이 막히고 얕트막한 산을 뭉게고 새로운 신축 호텔이 들어서고 있었다.
아~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이다.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른다.

'92 장마, 종로에서 - 정태춘

댓글 2개:

  1. 인구가 그리 됐냐.
    난 가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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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진찍어서 잔인한 현장을 확인사살까지 하고싶지 않아서 그냥 말로만 썼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인구'는 이제 없다.
    그 차갑고 무거운 콘크리트 아래 묻혀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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