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2011

마흔의 의미

나이를 먹는다는게 무엇일까?

스무살이 될 무렵은 내심 기뻤던 것 같다. 제도권 사회내의 성인이라는 하나의 존재로 각인되고 미성년자라는 어설픈 타이틀을 떨칠 수 있으니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또 있다면 과거를 돌아볼 필요없이 미래에 대한 생각만으로 족했으니까.
하지만 진작 알았더라면 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낙인 찍힌다는게, 구성원이 된다는게 맨입으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사회의 짐을 어깨에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무살에서 서른이 될 시점에는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게 나도 서른이 된다는게 마음속에 앙금처럼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거의 매일 들었던 것 같다. 노래만큼 어깨는 무겁게 느껴지고 희망찬 미래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도 대면해야 했고, 또 과거의 아쉽고 후회스러웠던 일들과 무모하다 하더라도 시도조차 못해본 수많은 계획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제 서른에서 마흔으로 갓 넘어왔다.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 인지 어떤 자리에서는 아직 만으로 서른아홉임을 주장하지만 씁쓸한 입맛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무살 무렵이었는지 서른살 무렵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마흔을 동경했다. 빨리는 아니지만 마흔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왜 그랬을까?
불혹(不惑), 말 그대로 사는일에 정신을 집중하기에 흔들림없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내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부분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한번 내밷은 말은 책임 지려했다. 그래서 함부로 약속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내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아직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 혼자만 그렇게 믿고 스스로 만족한 것 뿐, 단지 나를 믿어달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급급한건 아니였을까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아직은 내 말에 책임을 지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마흔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다시 나를 가다듬는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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