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2011

[음악] 아 대한민국

정태춘씨의 노래는 70년대부터 아주 서정적이지만 깊이 있는 가사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곤 했다.
시인의 마을 / 북한강에서 / 탁발승의 새벽노래 / 사망부가
이런 노래들이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그의 노래는 그 특유의 고향에 대한, 자연에 대한, 가족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대신해 갑옷을 두르고 차별과 독재에 맞서 싸우는 노래로 바뀌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고 한동안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통해 왜 그가 그의 정체성마저 바꾸었는지를 알게되었다.
세살 어린이도 알고 있는 '얼룩 송아지'라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얼룩 송아지'를 불러야 할까? 우리 전통소는 분명 '누렁소'인데 말이다. (최근 들어서는 '얼룩소'가 우리 전통소인 '칡소'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면 좋겠다.)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엄마 소도 누렁소 엄마 닮았네' 참 자연스럽지 않은가?

아무튼 그의 노래는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부글거리며 스멀스멀 올라오고, 모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나즉한 목소리에 한없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나온지 20년이나 지나 빛이 바랠만도 한데 아직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있는 의미는 생생한 사진들처럼 다가온다. 왜 그때와 지금이 이렇게 달라진게 없을까?
오늘따라 이 노래가 듣고 싶다. 맷값으로 천만원을 뿌려대는 재벌은 무사하고 몽둥이에 맞은 노동자는 기소당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저들의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게 속상해서다.


<아 대한민국, 1990년 작>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략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은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댓글 2개:

  1. 정말 똑같다. 허무하리만치... 20년이나 됐는데...

    답글삭제
  2. 20년 동안 열심히들 살았는데.. 과연 뭘 열심히 한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나쁘면 나빳지 좋아보이지는 않거든.. 앞으로의 20년은 어떨까.. 그리고 또 20년 후에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