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2011

만원버스 안

오랫만에 서울을 나갔다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를 보기위해서다.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지나갔고 아쉬운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막차 시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버스는 만원이였고 10여명의 사람들은 1시간가량의 거리를 서서 가야하는 상황이였다. 고속도로를 타기 바로전 정거장에서 한 남자가 버스에 올랐는데 마침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내리려고 준비를 한다.
몇 정거장 전부터 타고온 사람들이 다들 서 가는것을 보고도 내리려고 준비하는 사람을 보자 그 앞으로 비집고 들어와 좁은자리를 떡하니 자리잡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내 옆자리 사람은 다음정거장에서 내렸고 먼저 서있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일 없이 바로 자리에 앉는다.
속으로는 '이런 양심없는 사람 같으니..' 하고 눈을 흘겼지만 이 사람은 안하무인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는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약간 꼬부라진 목소리를 들으니 좀 취해있었다.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였고 전화내용이 참 가관이였다.

'여보세~요. 어 내가.. 술을 좀 마셨는데.. 30분뒤에.. 잠들지도 모르니까.. 30분뒤에..'
전화기 저편에서는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쟁쟁쟁 울린다.
'아니 자기야! 쳐먹다니.. 술을 드셨다고 하지 못할망정.. 먹은거지 쳐먹은게 뭐야..'
전화기를 통해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왱왱왱.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입 앞으로 천천히 가져가더니 짧고 굵게 한마디 한다.
'야! 이런 무식한 x아..' 하고는 황급히 종료버튼을 누르고 바로 잠들어버린다.

만원 버스에서 크게 웃을수 없었지만 너무 재밌는 상황이라 입을 막고 킥킥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추석이라 가족들을 위해 선물상자 하나를 들고 가는 남자.
날마다 북적거리는 만원버스 속의 늦은 퇴근길의 남자.
원하든 원하지 않던 참석해야 하는 잦은 술자리.
잠들면 내릴곳을 지나칠것 같아서 아내에게 부탁을해보지만 돌아오는건 날카로운 비수섞인 잔소리.
어쩌면 그 모습이 전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들의 아버지, 아니 이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것 같아 자조섞인 씁쓸한 웃음이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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