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2011

장수풍뎅이

작년에 유치원에서 장수풍뎅이 유충을 가져왔다. 과학교재에 딸려온것이다보니 대부분의 유충이 변태를 하기도 전에 쓸쓸히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장수풍뎅이 성충을 꼭 봐야 한다고해서 집도 늘려주고 톱밥도 다시 깔아주고 적당한 물을 주면서 습도도 유지했다.
몇 주일이 지나고나자 하얗던 유충이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더니 어느날 번데기로 변했다. 번데기에서 성충이되려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만 하루 하루 지켜보는 녀석 덕분에 나도 함께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번데기의 껍질이 갈라지면서 안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탈피를 한 장수풍뎅이 덕분에 며칠동안 즐거워했다.
여느날과 다름없던 어느 아침.
장수풍뎅이 집을 보니 텅비어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다행히 베란다 화분에 녀석이 숨어있다. 잡아서 집에 다시 넣어주고 날아서 밖에 못나오게 뚜껑을 닫았다.
그렇게 과일이며 젤리를 먹고 잘 자라던 장수풍뎅이가 어느날 아침 또 안보였다. 베란다에 있겠지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구석구석 다 뒤지고 화분이며 창고며 다 찾았지만 없다.
며칠을 기다렸는데 나타나지 않아서 아들에게 풍뎅이가 숲에서 살고싶어서 날라갔다고, 친구들도 있고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 갔다고 말해주었다.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잊혀진 장수풍뎅이였는데 엊그제 창고를 정리하다보니 무언가 검정색 커다란녀석이 툭 떨어진다.
들여다보니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채 작년에 사라졌던 장수풍뎅이가 거기 있는게 아닌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일년동안 아무 먹을것도 없이 살아있기를 바란 내가 잘못이지만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숲에서 친구들과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녀석에게 선뜻 보여줄 맘이 안생긴다. 그래서 사진 한장 남겼는데 아직 살아있는 느낌 그대로다.

사진을 찍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잊혀져버린, 살아있는 박제가 되버린건 아닐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